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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6 23:14
근황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1,692  

Bill_Fay_By_Erica_Parrott_2012.jpg

(사진출처_위키피디어)

근황


빌 페이

빌 페이라는 싱어송라이터가 있다. 지금껏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언급하려고 잠깐 검색 해보니 런던 출신의 영국사람이었다. 나는 이 사람의 앨범, 70년 71년도에 낸 두 장의 앨범을 정신적으로 피폐할 때 많이 듣는다. (그래서 요즘, 아니 좀 전까지 자주 들었다.)

비록 영국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도 몰랐지만 빌 페이 음악은 나에게 특별하다. 별다른 계기는 없다. 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를 통과한 사람들처럼 개인의 연대기와 그 속에서 애정을 갖게 된 음악을 드라마틱하게 연결 시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2000년대 말과 2010년을 통과한 세대이고 그런 낭만적인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음악은 인터넷 검색과 또다른 검색에서 일어나고, 요즘은 그마저도 네이버, 멜론, 유투브, spodify가 대신해주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음악과 관계를 맺는 아주 기본 방식까지 바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애정이 생기는 방식은 같다. 기꺼이 반복하고 결국 위로를 받게 된다는 (아마 레코드 발명 이후로 지속된)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다. 


오래된 음반들이 사랑받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다. 의미를 새롭게 찾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고 고정된 의미 속에서 편안하게 즐기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민을 섞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전의 것들을 반복하는 일은, 뭔가 놓치고 있다는 감정에서 우리를 구해주고 숨쉴 공간을 주는 것 아닌가. 항상 안절부절 못하며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갈증에서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은 아닌가. 이미 많은 좋은 것들이 있고 우리는 그걸 지키기에도 급급한 것이다.


어쨌건 이런 이유로 예전 음악이 여전히 새롭다느니, 얘기를 하고 싶진 않다. 빌페이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방점은 위안과 안녕이다. 인간에게는 그런 것도 필요하다.

여러 멋진 곡들이 있는데 내가 소개하고 싶은 노래는 이 노래다. 특히 최근에 자주 들었다.


Garden Song


I'm planting myself in the garden

Believe me

Between the potatoes and parsley

Believe me


And I'll wait for the rain to anoint me

And the frost to awaken my soul

I'm looking for lasting relations

With a greenfly, spider or maggot

Believe Me


They're telling me something I don't know

Telling me

They're telling me something I think so

Telling me


But I'll wait 'til I know there's a moment

To get up from my chair by the sea

And I'll be able to say that I've been there

Telling me something I don't know

Telling me


나는 정원에 나를 심고 있어

나를 믿어

감자와 파슬리 사이에서

나를 믿어


나는 비가 나를 감싸기를 기다려

나는 서리가 나의 영혼을 깨우기를 기다려

나는 지속되는 관계들을 찾고 있어

진딧물과 거미와 구더기 속에서

나를 믿어


그들은 내가 모르는 것들을 얘기해

얘기하고 있어

그들은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을 얘기해

얘기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기다리고 있어

그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알 때까지

바닷가의 내 자리에서 내가 일어서는 순간이

그때 나는 말할 수 있을 거야. 내가 그 곳에 있었다고.

 


친구

얼마전에 친구를 만났다. (정확히는 마주쳤다고 해야 한다.) 집으로 가는 합정역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서울 한 복판에서 누군가 나를 지칭하면 내 이름을 부를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어딘지 목소리가 낯이 익어서 돌아보니 내가 아는 두 명의 친구였다.

올해 결혼 (아마도) 4년 차인 부부 친구들이다. 우리가 함께 하던 독서 모임에서 만난 둘은 연인이 되었음을 선포하더니 1년 쯤 뒤에 결혼 소식을 선포해서 나(와 함께 아는 다른 모두)를 놀라게 했다.

구태여 따지면 남자인 쪽이 좀더 기존 친구에 가깝다. 나와 안 지 횟수로 8년차인 그는 심리학과 출신에 대학에서 환경운동에 전념했고 졸업하고 한 동안 시민단체 간사 일을 하다가 (출판사 편집자 일도 생각해보다) 생각을 바꿔 대기업의 프로그래머로 취직을 하더니 아직도 거기에서 조용히 자리를 보존하는 중이다.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그는 면접에서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북한입니다”로 대답했다.

회사에서 이틀의 일을 2주의 스케줄로 잡기 때문에 그를 포함한 모두 컴퓨터로 ‘일하는’ 퍼포먼스를 해야 하는데 이를 이용하여 그가 하는 일은 컴퓨터로 e북을 보는 일이다.  회사에서 그는 사람들이 인원을 셀 때 제외될 정도로 무개성의 캐릭터이며 그가 컴퓨터로 e북을 본다는 사실, 꽤 대단한 독서가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여자인 쪽은 아직 20대 후반이다. 그녀는 대학에서는 미술을 대학원에서는 미술사를 전공했고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싶었으나 생각을 바꿔,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중인 신생 가방회사에서 마케터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커리어를 향한 스스로의 집념에 놀란다고 했다.

그들은 결혼하면서 각자의 부모들에게 받은 돈과 자기들의 밑천을 합쳐 얻은 전세 아파트 옆동으로 이사를 갔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강한 영감으로 옆동 아파트를 샀는데 사고 나서 시세가 1억이 올랐다고 한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재밌어서 넋을 놓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돌파구를 찾는다. 그 돌파구가 우리가 독서 모임에서 같이 봤던 책들의 대답과는 조금 다른, 색다르거나 혹은 뻔한 돌파구라도 말이다.


친구2

최근에 만난 다른 내 친구는 유부녀다. 물론 나도 유부녀지만 그녀는 이제 아이까지 있는 단계가 다른 유부녀랄까. 나는 그녀가 유부녀라는 개념을 상상 속의 아무개로 떠올릴 스무살일 때의 모습을 기억한다. 나도 잘 아는 선배와 결혼한 그녀는 지금 파주에 살고 있다. 나도 아는 그녀의 남편은 소방공무원으로 그녀는 내가 일하는 곳에서 차로 5분이면 도착하는, 공무원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녀는 이제 말을 막 하기 시작한 비아(그녀의 아들)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와 점심을 먹으러 온다.

그녀의 아들은 태교가 효과가 있는지 아들이 요즘 영어에 빠졌다고 한다. 아이를 낳기 몇 주 전까지 호주에 있었기 때문인데, 아이가 ‘오렌지’에 반응하더니 영어 단어로 색깔을 배우는데 여념이 없다고 한다.

다른 곳(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서 계속 사는 일에 대해 얘기한다. 미세먼지와 소소한 배려의 문제를 뺀다면 한국도 나쁘지 않다는 얘기를 한다. 문제는 이 둘이 너무도 심각하다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서 불친절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슬프게도 이 문제를 ‘그 문제만 빼고’로 일축할 수 있는 문제로 여기고 있다.

그녀는 호주에서 그녀가 어떻게 대해졌는지 기억한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녀가 나타나기만 해도 모두 자동 반사로 자리를 비켜주고 무언가 더 해줄 일이 없는지 안절부절 못해, 그녀가 도리어 안절부절 못했다는 거다. 이곳은 어떤가. 임신한 여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배려의 압박’을 줄까봐 안절부절해 하는 상황인 거다.

얼마전 비아에게 지하철을 구경시켜 주고 싶어서 ‘몇 정거장’ 가지 않아도 되는 곳이기에 지하철을 탔는데(아이가 있는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곳이다.) 자리가 없어서 한쪽 구석에서 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고 한다. 지나가는 풍경들을 비아에게 하나씩 알려주고 있는데 거의 반대편 출구 옆 자리에 앉아 있는 흑인 여성이 그녀에게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는 거다. 그녀는 너무 창피해서 내려야하는 정거장이 되기도 전에 내렸다고 한다. 다른 한국 사람들은 각자의 일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물론 이건 외국인과 내국인의 문제는 아니지만)이 자신에게 친절을 표현하는 일이 너무도 창피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하며 나와 내 친구가 나눈 것은 분노보다 슬픔에 가깝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나 자기를 배려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다른 이에게 친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나 스스로에게 친절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꼰대들과 불친절한 이들을 얘기하다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들이 곧 그들의 자리에 있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될 것인가.


마포 16

망원동으로 이사왔다. 전에 살던 돈암동은 언덕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면 망원동은 평지와 한강이 있다. 언덕의 논리에서 평지의 논리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나는 그저 파주에서 좀더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긴 것이다. 그렇지만 쓸데 없는 논리로 의미를 보태보자면 가능성을 열심히 생각하는 대신 땅에 발을 디디는 시간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해본다. 지금은 개미처럼 열심히 일을 해야 할 때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있는 이곳, 망원동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망원동의 망원은 <멀리 본다>는 뜻이고, 망은 <희망>으로도 읽을 수 있으니 <멀리 있는 희망을 본다>로 조금 오역해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합정에서 파주로 가는 셔틀 버스를 타기 위해, 나는 매일 마포 16버스를 탄다. 마포 16번 버스에는 몇 주째 같은 책 광고가 걸려 있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고조선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 같다. 최초의 문명 국가라는, 위대한 한민족이라는 문구도 보인 듯하다.

역시 이 문구를 보고 내가 느끼는 것은 슬픔이다. 우리는 우리를 존중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존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보려하기 보다 5,000년을 거스른 환상이 유효한 것 아닌가. 위대하지 않아도 한민족이라는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이곳에 있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 이유란 무엇인가. 나는 하나 확실한 이유를 들 수 있다. 선문답 같은 말이지만 말이다.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

어쩌다 보니 회사 디자인팀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경력도 많은 선임이 되었다. 선임으로서의 냉정하게 지금까지의 점수를 따지면 그렇게 좋은 점수는 못 줄 것 같다. 나는 내 일도, 내 앞가림 하기에도 급급해서 든든한 방패막 같은 것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스로의 일과 고민에 치여서 얼마나 정서적으로 불안했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분명 나는 주위 사람들이 나를 신경쓰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가 진정 나쁜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 그렇게 은근히 스스로에게 자비로웠던 것이다. 나에게 자비롭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비난만 할 뿐 상황을 바꾸려 하지는 않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나 단순한 논리가 나를 불러 세운다. 스스로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느 누구도 배려를 해줄 수 없다. 스스로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 남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일단 생각을 바꿔서 무능한 나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이 남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직장 동료 디자이너와 얘기하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지 얘기한다. 한국 사회의 모든 직종과 마찬가지로 30대 출판사 디자이너에게 직장에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제3의 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두 가지 길로 압축된다. 프리랜서로 전향하거나 실무보다 관리직을 맡아야 한다.

프리랜서로 나가지 않는 이상, 회사에 있는 이상 어떤 상사가 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이제껏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다. 동물로 비유하며 이것저것 생각해본다. 하이에나냐, 사자냐 이런 말을 우스갯 소리로 하다가 동료가 내게 코끼리를 제안했다. 나도 동의했다. 평화의 동물이고 어른이 되어 자기 힘을 가지면 사자도 건드리지 않는 코끼리, 최고로 마음 편한 동물일 수도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는 엄청나게 풀을 많이 먹고 똥도 많이 싼다는 점, 또 부피가 크다는 점, 중력의 힘으로 단단하게 땅에 서 있다는 점이다. 돌아와서 책상에서 함께 있는 사무실에서 생각해본다. 코끼리는 코끼리이되, 살금 살금 걷는 코끼리로 조정해본다.  

 

+

몇년 전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빌 페이를 검색해봤는데 웬걸 새 앨범이 나왔다. 무려 41년 만의 일이었다! 나는 혼자서 소리를 질렀다. 41년이라니. 게다가 내가 좋아하던 wilco의 그 유명한 <Jejus etc.>를 커버한 곡도 있었다.

누구라도 이런 순간이 오면, 이 음악이 나를 찾아왔다고 믿고 싶은 충동을 떨치기는 힘들 것이다. 충동을 떨치는 것 대신 설득력 있게 바꿀 방법을 생각한다. 다른 사실도 보탠다. 나를 위해서도 또 다른 이를 위해서도 존재한다고 말이다.

사실 더 놀라운 점이 있다. 그는 그리고 나서 최근까지도 꾸준히 앨범을 내고 있다. 새로 나온 앨범이 전보다 더 좋은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그의 예전 음악이, 예전 목소리가 좋다. 하지만 응원할 수 있어서 즐겁다. 더 좋아서가 아니라, 더 나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이 곳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