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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25 19:09
진보, 그리고 언론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511  
진보, 그리고 언론

글_임아연 당진시대 편집부장 


#1. 첫 번째 기억

엄마가 그랬다. “세상은 흑과 백, 선과 악, 두 가지만 있는 건 아니야. 기자를 꿈꾸는 네가 좀 더 입체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학교 밖 세상을 경험하면서 집회현장을 쫓아다니고, 진보적 가치를 고민하던 딸에게 엄마가 얘기했다. 당시에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오히려 비겁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분명 옳고 그름이 있지!’  


#2. 두 번째 기억

당진시대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수습기자 때 편집국장에게 물었다. “당진시대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작은 지역신문이지만 분명 진보적인 언론이라고 알고 입사했는데, 당진시대에서는 새마을운동을 하는 지도자들이나 부녀회가 추진하는 각종 활동(꽃 심기, 폐가전·폐비닐 수거하기, 어려운 이웃돕기 등등)에 대해 작게나마 지속적으로 지면에 게재하고 있었다. ‘관변단체’인 새마을과의 관계도 꽤 좋아보였다. 의아했다. 

편집국장이 말했다. “저널리즘이지.” 

저널리즘과 새마을이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언론은 권력을 비판·감시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편집국장이 얘기한 저널리즘은 무엇이지? 

그렇게 기자를 꿈꾸며 산지 10년 만에, 그리고 기자가 된지 7년 만에 엄마의 말과 편집국장의 이야기가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랐다. 


#3. 진보적 가치와 저널리즘 

최근 당진시대는 당진시립합창 노조가 신청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비상임인 당진시립합창단은 최근 당진시에 상임 전환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도 하고 기자회견도 했다. 주 12시간 근무에 월 140만 원 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최근 민주노총에 가입, 집단행동에 나섰다. 

당진시대에서는 당진시립합창단 상임화를 두고, 월 급여 수준을 비롯해 노조 측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했고(노조 측의 주장과는 상당히 달랐다), 현재 12억 원의 당진시 예산이 투입되지만 상임화로 전환할 경우 타 시립합창단 운영 실태 등을 기반으로 추산한 결과 1.5~2배 가량 예산이 증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상임화에 앞서, 상당한 당진시 예산이 투입되는 당진시립합창단에 더 많은 예산 투자가 필요할 정도로 현재 당진시의 문화예술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공론화 하고, 시민들의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도했다. 

더구나 당진시립합창단원의 60% 이상은 타 지역에 살면서 주 3일만 당진에 와서 연습하고 활동하기 때문에, 당진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용하는 시비를 더 많이 투입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내용 또한 포함됐다.   

당진시립합창단은 당진시대가 초단기근무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며 성명을 발표했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민주노총 당진시위원회와 당진참여연대, 당진환경운동연합 등의 진보적 사회단체들과 정의당·노동당 등 진보정당이 함께 참여해 힘을 실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서는 당진시립합창단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솔직히 진보진영에 대한 실망감을 느꼈다. 노동의 관점에서 그렇게 주장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당진시 공공의 사안에 대해 사실을 검증하고 토론하고, 여론화 하는 지역언론의 역할마저 성명 발표와 언론중재위 제소를 통해 압박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편이 아니면 ‘악’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당진시 예산의 쓰임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하던 시민사회단체가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서 진행되는 일에 대해선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진보는 우리 편을 들어줘야 해’라는 식의 모습을 보이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라는 가치와 ‘선(善)’이라는 개념이 등치될 수 없고, ‘저널리즘’은 진보·보수의 이념과 상관없이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한다는 생각. 그것이 10년 전 우리 엄마가 했던 이야기와, 어린 수습기자에게 했던 편집국장이 했던 말의 의미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