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대전충남인권연대로고
대전충남인권연대소개 인권피해신고접수 인권교육안내 미디어 자료실 후원자원봉사안내 참여마당
 

박현주(시민참여연구센터 사무국장) 손주영(북디자이너) 이광원(청소년인문강사) 이희옥(교사)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팀장) 오임술(민주노총대전본부) 임아연(당진시대기자)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작성일 : 18-02-08 09:30
나고야 3박 4일 방문기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1,323  



나고야 3박 4일 방문기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이미지 4.jpg

▲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일본 나고야 거주 교민들나고야의 중심가인 사카에에서 열렸다뒷쪽에는 나고야의 상징물인 텔레비젼 탑사진출처이두희


 지난 21일부터 4일까지 일본 주부지방 아이치현 나고야시와 이누야마시를 방문했다. 20대때 한국기독청년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세계기독청년들과 교류했다. 그 인연으로 독일, 프랑스, 중국 등을 다녀왔고, 세계여러나라 기독청년들을 초청해 교류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 특히 재일동포 청년과 우리나라 청년은 매년 차례대로 장기 체류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때 실무를 담당했던 선배가 재일교포 선배와 결혼 했고 나는 당시 활동했던 동우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 이 방문기는 방문지에 대한 스케치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기사도 찾아보고, 자료도 찾아보니 나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지만 오래전의 이야기였고 나만 몰랐던 일본 방문기가 아니었나 싶다. 아이 셋을 키우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 되었지만 그래도 좀 나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안은 감시와 차별을 낳는다.

 우리는 외국을 입국(목적이 여행이든, 사업이든, 친지 방문이든)할 때에는 잠재적인 범죄자가 된다. 그래서 입국심사시 긴장을 한다. 일본은 입국심사 시 지문판독기에 검지를 지문날인하고 얼굴 촬영에 응해야 한다. 지문 채취는 미국 다음으로 200711월부터 시행했고, 지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테러리스트의 유입과 강제 추방된 외국인의 재입국을 막는 것에 사용한다. 나는 입국심사서에 여행으로 표기하고 호텔이 아닌 선배의 주소를 적었다. 심사관은 일본어 쓰기에 서툰 내 입국심사서에 대해 설명을 요청했고, 나는 선배가 전에 보내준 주소를 심사관에게 보여주었다. 심사관은 조회와 함께 그 선배의 이름을 심사서에 적었다. 출국 할 때에도 다리를 벌리고 서서 손을 올리고 원형 전신 검색대를 통과한 후 몸수색을 받았다. 기분좋은 출입국은 아니었다.

 마지막 날 저녁, 우리는 나고야 사카에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시내를 거닐었다. 종종 일본경찰 네 다섯명이 짝을 맞추어 순찰을 했다. 선배는 순찰중인 경찰이 나타나면 조용히 하고 걷기만 하라고 했다. 이유는 이 경찰들이 불신검문을 한다는 거다. 치안을 위해 협조해 줄 수 있지만 꼭 동양인(서양인은 확실히 표가 나지만 그들에게는 불심검문이 없다고 한다)에 대한 불심검문이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선배도 몇 번 항의를 했다고 한다.


 2. 보행자가 존경받는 거리


 나고야는 일본에서도 대도시에 속한다. 대전보다 면적은 213.41좁지만(나고야역에서 이누야마유엔역까지 40분 가는 동안 철길따라 마을이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경계를 못 느꼈다.) 인구는 80만이 더 많다. 일본 거리는 깨끗했다. 불법주정차도 볼 수 없었다. 주택가의 자가용은 집 주차장에 있었다. 사람들은 도로의 폭과 상관없이 신호등(신호등도 청각장애인을 위해 새소리가 나고 그 소리도 신호등 위치에 따라 다르다)에 따라 행동했다. 아파트가 빼곡한 우리동네 주택가와는 달리 3층 정도의 단독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시야가 확보되니 이동시 답답하지가 않았다. 신기하게 모든 집의 창문은 커튼으로 가리워져 있다.

 우리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취약하다. 정비되지 않은 보도블럭과 쓰레기, 불법주정차, 구분없는 자전거도로와 보행도로 그리고 질주하는 자동차가 보행자-2014년 기준 OECD 국가별 노인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사망자는 우리나라가14.39명으로 OECD 1등이다. 일본은 3.17명이다.-를 위협한다.


 3. 일본 장애인 화장실


 일본의 백화점과 관광지를 방문할 때 장애인 화장실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선배는 지체장애인 시설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일본 장애인 화장실에 대해 설명했다. 화장실은 전동휠체어가 돌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성인을 누일 수 있는 간이침대, 샤워시설, 세면대, 안전봉 등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요즘은 쇼핑시설이 관광지보다 접근성이 용이해서 쇼핑센터 방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나 또한 백화점과 관광지에서 장애인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바닥면적 300이상인 공중이용시설만 장애인 이동편의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바닥면적 200미만 소규모 건물들도 장애인을 위한 출입구 및 화장실 통로 등 편의시설을 갖추어야 한다.(2018. 1. 8 서울경제 보도)

 선배는 최근 일본에서는 지적장애를 이유로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한 60대 여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고 말해 주었다. 2018. 1. 30일자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우생보호법(지적장애인 등에 대한 불임수술과 인공임신중절)에 근거해 본인 동의 없이 이뤄진 수술이 일본내 16천여건 이상으로 보도했다. 선배는 소록도에 있는 한센인들에게 불임수술을 강요한 것도 일본식민지때의 일이라고 말했다.

 선배는 일본의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장애인시설이 잘 갖추어진 것은 인정하지만 정치의 무관심과 식민지배나 침략전쟁의 미화, 일본제국 헌법의 우수성 강조 등 교과서 왜곡에 따른 교육문제, 현실에서의 안정감이 오히려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본사회를 말할 때 평화치매(平和ボケ헤이와보케). 즉 전쟁없이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까 어떻게 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는지 생각도 않하고 고민도 안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에 치매라는 말이 차별적인 언어라서 쓰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4. 메이지 무라와 메이지 유신 150주년 기념행사

 

 메이지 무라는 메이지 시대 전후 지어졌던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철거 후 이누야마시 근교에 복원한 야외 박물관이다. 플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제국호텔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저자 나쓰메 소세키의 주택 등 60여동의 건축물과 증기기관차, 노면전차, 버스, 의복 등 그 당시를 재현했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메이지 시대는 무사들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대변혁을 이룬 시대고 모든 분야에서 서양의 기술이나 제도 등을 적극 받아들여 일본의 전통과 융합시키면서 근대화가 진행된 시기라고 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중앙집권체제 강화와 산업육성, 군비를 확충했으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발판을 만들었다. 메이지 무라 각 건축물에는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기념하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여 있었다. 아베 총리는 올초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메이지 유신 150주년 기념행사와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한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제2의 유신을 통해 평화헌법을 시대에 맞게 개정하고,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러나 선배는 메이지 유신 150주년 기념행사가 기대만큼 흥행은 없다고 말했다.

 

 5. 나고야 촛불집회


 우리는 마지막으로 나고야에서 열렸던 박근혜 퇴진 집회 현장인 사카에 있는 Hisaya Park로 향했다. 일본 나고야에서 박근혜 퇴진을 향한 함성과 촛불집회는 201611월부터 16차에 걸쳐 개최 되었다. 선배는 나고야 촛불집회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나고야 집회는 재일동포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참여 했고 장소와 관련된 조언, 마이크 등의 집회 물품 지원, 모금까지 도와주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본 반전 운동가인 야마모토 미하기씨는 박근혜 퇴진 운동을 보면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선배는 이외에도 나고야에서 개최된 영화<귀향>상영회, 세월호 3주기 추모모임, 일본의 반전평화 모임, <자백>상영회와 간첩사건 피해자 증언집회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난 일본에 가기 전 까지 선배가 무슨일을 하는 지도 몰랐다. 지금와서 기사를 자세히 보니 그 선배는 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6. 나가며


 이 외에도 나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34일을 지냈다. 일본 사람과 우리의 생긴 모습이 닮았다.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고 들었고,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또한 남의 사생활에 대해 말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권력자들은 많은 것들을 독점하려고 했다. 그리고 독점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펼친다. 그 부정한 방법은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다.

 나는 인천공항에서 대전으로 오는 길에 대장 김창수라는 영화를 봤다. 그 영화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천에 열차가 들어와 한성과 연결되면 이땅이 얼마나 발전할 지 너 같은 새끼가 알기나 해

 “그 철로를 따라 얼마나 많은 조선땅이 저들의 손에 넘어갈지 참혹한 노역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갈지 저들의 수탈이 얼마나 더 심각해질지 모릅니까?”

 “지금의 조선의 누군가는 분명히 일본의 뒤에 숨어서 우리가 흘린 피에 댓가를 가로채고 있을꺼요. 당신들이 가로챌 권한은 없소.”

 

 이러한 행위는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자연과 개인의 삶을 수탈하고 생명의 댓가를 가로챘다. 또한 조선땅 뿐만아니라 징용으로 끌려간 노동자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해서도 수탈의 행태는 똑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커 온 기업이 지금도 일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엘리베이터부터 군수물자, 원자력발전소까지 반평화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는 전범기업 미쓰비시다. 또한 우익 교과서 개정을 지원하는 아사이 맥주(음료).

 

 짧은 여행이었지만 조금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아베정권에 대한 관심을 갖을 만큼의 기회를 얻었다. 또한 우리에게 평화가 왜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평화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것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