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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24 09:15
활동가도 노동자다. 콤플렉스를 던져 버리자!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174  
활동가도 노동자다. 콤플렉스를 던져 버리자!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연말연시 송년회를 비롯해 각종 모임과 결혼식, 장례식이 잇따르고 있다.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블록체인, 비트코인, 아파트 시세차익의 이야기를 들으며 화폐와 집에 대한 고유한 의미는 사라진다. 이러한 가치전도는 돈 먹고 돈 벌기라는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로 인정 된다. 촛불 투쟁으로 정권도 바뀌었으니 각자도생으로 ‘나 여기 자본주의에 살고 있소!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한다. 그것이 학생운동을 했던 지금 무엇을 하든지 상관이 없다. 민주화된 세상은 역설적으로 개인화, 파편화를 만들어 간다. 활동가들의 말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될 뿐이다. 

  평창 올림픽이 다가온다. 금방 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하던 분위기가 남북한 단일기 사용 및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으로 논란이다. 지금까지 고생한 선수들을 걱정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단일팀 반대를 주장하고 일부는 민족 동질성 약화를 이용해 정치공세를 펼치기도 한다, 무조건적인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강요 하던 시대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정치적이고 불공평한 동계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많다. 자그마한 사업장 대표 직함을 갖고 있는 친구들은 ‘나도 근로자들 편인데 노동조합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 한다. 장비를 쓰기가 너무 어렵고 예전에는 새벽 일찍 나와서 준비하고 일했는데 지금은 8시쯤 시작해서 오후 5시 전이면 일을 마무리 한다는 것이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퇴근한다고 한다. 값싼 이주노동자들을 못쓰게 하는 것도 불만이다. 관리자로서 대표로서 힘들다고 하소연 한다. 친구야! 어려움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희들도 노동자 시절이 있었잖아! 노동자들 임금 많이 받는 다고 하는데 그러면 너희들이 그 일 할래? 서로의 뻔한 위치에서 각자의 생각을 듣는다. 노동자와 자본가들의 사고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어떤 친구는 노동조합 활동이 장기적으로 건설현장을 변화 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노동자이면서 관리자인 친구에게 노동조합을 권유한다. 노동조합의 노동자를 공격 할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사용주에게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라!

  느닷없이 페북 타임라인에 후배 녀석이 노조 상담을 받았는데 내 팽개쳐 졌다면서 알 듯 모를 듯한 글을 올렸다. 중간 소개자가 나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시민단체 상근자로 활동하던 녀석의 고민이 기억났다. 시민단체에 종사하는 상근자도 노동자이고 부당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해결해 볼 것을 권했다. 노동단체나 시민단체, 무슨 자원봉사라는 이름의 상근노동자들이 노동권 보장을 외칠 때는 상대적으로 더 어려울 수 있다는 말도 전했다. 전국단위로 생각하라며 담당자를 소개해 주었던 기억이 났다. 민주노총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리던 후배는 해고 되어 화가 났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모 생활협동조합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탄압에 의해 좌절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 생협은 자신들과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 했지만 사용자성이 부정되기는 어려운 듯 하다. 문제는 그 탄압양식이 악덕 자본가들이 사용하는 방식과 같다는 것이다. 개별조합원에 대한 회유와 징계, 압박으로 각개격파하고 노조 간부에 대한 보직 이동과 비리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노조를 무력화 시킨 것이다. 한국사회 각종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수면위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노동권 확대를 주장하는 진보정당과 노동단체는 자유로울까? 노동계나 시민사회진영의 상근활동가들이 노동권을 주장하는 것은 금기어가 되곤 한다. 없어진 진보정당 당직자가 퇴직금을 신청했다가 활동가가 무슨 퇴직금이 있냐는 핀잔 속에 퇴직금 소송을 진행했던 일도 있었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내부에서 쪼개어 주기도 했다. 따로 정확한 노동시간이 없다. 출근시간은 있으나 퇴근시간도 없고 주말도 딱히 정해지기 힘든 활동 구조다. 그러한 활동가를 지탱하게 했던 가치도 흔들리고 있다. 노동단체나 시민단체가 성장하고 비대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선출된 임원들과의 생각의 차이, 고용주적 태도와 권위적 운영방식은 상근 활동가들의 노동인권을 돌아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회변혁을 위해서, 지역사회를 위해서, 조합원을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라는 공동체지향의 단어로 더 이상 노동3권 주장을 막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민주화된 세상에서도 먹고는 살아야 할 것이고 노동관계는 지속된다.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각자의 노동권을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것이 아니면 철저하게 자본의 관계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살아야 한다. 더 이상 활동가라는 억압적 사슬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고 살아가는 처지는 똑같다. 활동가들을 부려먹는 노동자로 취급하면서 사용자의 지위를 강화하고 있는 내부 환경에서는 노동조합 결성과 노동인권 주장은 올바른 판단이다. 엄마 콤플렉스를 없애 듯 활동가 콤플렉스도 벗어 던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