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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10 17:21
새해 안부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1,963  
새해 안부

글_손주영(북디자이너)

  2018년이 되었다. 나는 올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나로서 2018년을 맞이한다. 30년이나 넘게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지겹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요령이 생기는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잘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다. 

  회사를 옮기고 세 달이 되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시간이 하는 일을 깨닫는 일이다. 내가 일하는 공간은 2층 안쪽, 3층과 통하는 계단에 접해있다. 처음에는 이름과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어느새 나는 계단에서 내려오는 발소리로 짐작한다. 그리고 적중도가 꽤 정확한 편이다. 

  이곳에 와서 나는 날아가는 백로와 기러기의 배를 본다. 건물 벽면으로 지나가는 그림자를 본다. 고개를 돌리면 책꽂이 위 창문으로 보이는, 앙상한 나무 가지를 하루에도 몇번씩 쳐다본다. 회의 전 사람들의 긴장과 퇴근 전 부산함을 본다. 서버에 저장된 파일 이름의 저장 방식을 보고 직장 상사의 일란성 쌍둥이 형제 얘기를 듣는다. 

  얼마 전에는 친구의 친구를 통해서 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에 있던 골목이 바뀐 걸 전해 들었다. 한번도 들어가본 적 없는 (내 생각에 꽤 끔찍한 인테리어)의 유로피안 스타일 카페가 분식집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따져보면 수천번 지나갔을 골목길이 바뀌었다. 나는 익숙해지는 것과 낯설어지는 것의 평등함을 깨닫는다. 당연한 얘기다. 한 공간이 익숙해지는 만큼 다른 공간은 낯설어진다.

  그건 뭐랄까, 어느 하나 공짜가 없고 더욱이 세상의 어느 조각 하나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로 들린다. 시간은 얼마나 무서운가. 이전의 것들은 닫고 새로운 것을 열만큼 무섭다. 무시무시한 새로운 해가 열렸다. 바야흐로 2018년이다. 십대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한 시간이다. 

  작년 연말, 이주쯤 전 언젠가 남편과 함께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에 실린 ‘2017 in Photos: Wrapping Up the Year’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연말에 집안에서, 가능한한 편한 자세로 그 해의 리스트를 챙기는 것은 우리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그 해의 사진들과 올 해의 뮤직비디오, 그 해의 음악을 듣는다. 분명 추리고 추린 그 해의 리스트일텐데 이때 보고 듣는 것들은 처음 접하는 것이 대다수다. 세상은 넓고 볼거리도 많은데, 내가 사는 동네는 작고, 내 눈은 한 쌍, 귀도 한 쌍이 전부라서 그렇다.

  2017년의 사진들 중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사진은 난민 사진이다. 시리아와 시리아의 난민들. 여전히 어딘가에서 전쟁은 진행 중이고 다섯살 아이가 죽는다. 작년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총과 포탄이 내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 얘기를 왜 하는 걸까? 타인의 아픔의 경각심의 도구로 삼고 싶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앞서 그 일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한번 더 확인한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나는 이 시간을 전쟁 속에서 아이들의 죽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남편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시칠리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크리스마스는 역시 유럽의 정서를 따라야한다며 기념으로 와인 한 병을 시킬 때도 누군가는 불행하다. 

  나는 다른 사실도 확인한다. 나는 운이 좋다는 사실이다. 나 스스로와 나를 둘러싼 공기 중에서 많은 부분이 운으로 뒤덮여 있다. 나는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고, 모든 고통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고통은 그저 불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슐리 르 귄의 말대로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이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동시에 운을 생각해본다. 불운은 그저 랜덤으로 닥치는 것이고 거기에 우리가 배울 의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통해서 인간이 성숙한다는 것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서사이다. 서사의 방점은 고통이 아닌 고통 이후의 삶에 관한 것이니까. 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서사이다. 역시나 불필요한 고통은 겪지 않는 편이 낫다.

  나도 무언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서사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령 기독교 신도가 된다면, 본인보다 큰 어떤 것에 봉사하며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확실할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나도 나의 서사를 만든다. 일, 결혼제도,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 좋아하는 책, 음악, 영화, 사람들의 궤변, 지하철 시간표, 등등. 

  안락한 서사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역시 나는 운이 좋다. 

  운이 좋은 사람으로써 내가 할일은 내가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운이 좋을 수 없으며, 앞으로의 나의 인생도 지금처럼 운이 항상 좋을 수만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내가 이걸 기억한다면 지구 반대편에서 굶주리는 사람에게, 아무런 자의식 없이, 인간으로서 매월 돈을 입금할 수도 지하철에서 만나는 무기같은 백팩을 매고 이리 저리 움직이는 무신경한 사람들에게, 경멸이 아닌 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부족한 면을 너무 몰아 세우지도, 남들의 의견에 휘청대며 하고 싶은 말을 못하지도, 재미없게 하루를 때우지도 않을 것이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조금 친절해지는 것 외에 우리에게 많은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2018년이 왔다. 지금도 지구는 초속 29.7859km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나는 현기증이 난다. 세상이 너무 빨리 돌기 때문이다. 멈춰서 소망을 빌어 본다. 1월이라 할 수 있는 인사를 해본다. 모두들, 누구든 복 많이 받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