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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07 14:54
인권희망고문 노동존중시대 내로남불은 가라!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342  
인권희망고문 노동존중시대 내로남불은 가라!

글_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대통령선거가 얼마 전 끝났다. 아주 오래된 것처럼 빠른 속도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촛불 투쟁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함께 공공기관 비정규직제로시대를 선언하며 준비된 대통령임을 보여주듯이 발 빠른 행보를 보여준다. 높은 지지율에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내부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것인지 야당들은 우왕좌왕 하며 청문회에 임하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과거 내세웠던 총리 및 장관급 후보자들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고 있어도 무조건 반대로 일관한다. 물론 당시 야당 지지자였던 지금의 대통령 지지자들은 반대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다. 다시금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시대다. 

  2천만 노동자들 중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는 특수 고용노동자들을 포함해서 절반에 해당한다. 누가 뭐래도 비정규직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과오가 크다.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없는 법을 만들어 비정규직 확산을 방조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노동귀족이라는 싸늘한 여론 속에서도 파업을 감행했었다. 그런데 당시 정권과 지지자들은 법은 문제가 없고 집행 의지 문제로 보기도 했다. 역시 내로남불 시각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과오를 인정하듯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내걸고 있다. 일단 시도는 긍정이지만 정년만 인정되고 차별은 존재하는 무늬뿐인 정규직, 중규직을 양산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비정규직 확산 입법을 반대하며 파업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했던 당시의 노동귀족 논리 그대로 6말7초로 예정된 비정규직 중심의 사회적 총파업에 대해 공격하는 것을 볼 때 씁쓸함을 안겨 주고 있다. 노조 할 권리보장, 최저임금1만원, 비정규직철폐, 재벌개혁, 적폐청산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내용이다. 지지 성향에 따라 조변석개하고 내로남불식의 대응은 곤란하다. 이런 식이면 정당한 노동권 행사를 수행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귀족노조가 되는 웃픈 현실이 된다.  

  수많은 국정과제들이 있지만 최저임금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매년 최저임금은 6월30일까지 최저임금위원회를 거쳐 노동부장관의 고시로 확정된다. 노동계는 들러리 위원회에서 철수한 상태이며 지금당장 1만원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이든 비정규직 문제해결이든 6월30일 최저임금 인상폭에 따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최저 생계비(2017년 1인당 1,652,931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최저임금(2017년 시급 6,470원)과 최저임금 위반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유지된다면 새 정부의 경제 정책도 내로남불로 규정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은 희망을 걸고 있다. 인권 대통령을 원하고 있고 성공한 대통령, 상식적인 대통령을 원한다. 박근혜정권의 반대로만 해도 국민들은 박수 칠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로 지지율은 빠질 것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될 적폐들이 너무 많다 보니 지금 당장 해결하려는 요구와 수구 기득권의 저항은 속도조절론, 피로감, 개혁의지 후퇴 논란 속에서 어떤 대응을 해 나갈 것인지에 따라 정권의 앞날과 지지 여부가 결정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편의대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역지사지를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 내로남불이 되기도 한다. 오늘 아침 출근 수단이 무엇이었는가에 따라 돌이켜 보면 많은 생각이 교차할 것이다. 서 있는 곳, 사회적 존재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노동기본권은 천부인권의 개념이지만 노동자 스스로의 위치를 망각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교사 노동자들이 선생님으로, 언론 노동자들이 기자, 아나운서, 프리랜서로, 과학자로 무슨 무슨 선생, 무슨 무슨 직종과 호칭에 따른 분류가 차이를 만들고 차별의식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같은 직종이어도 입사 방식에 따른 차별을 낳는 현상을 노동자들이 먼저 없애야 한다. 지역차별, 대학 서열화에 따른 차별, 인종, 성에 따른 차별도 노동의 문제에서는 평등해야 한다. 학교 안에서 선생님으로 호칭되는 수많은 직종 선생님들도 차별이 숨어 있다. 방송국이든 여타 사업장의 다양한직종의 노동자는 입사 방식과 고용형태에 따른 차이에서 차별이 발생하고 공고화 된다.선생님, 작가님, 기자님, A양, B군, 때론 외국 놈으로 성실함을 뜻하는 근로자로 규정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식의 논리가 아니라 인권적으로 옳다면 그것이 먼저다. 사실, 기독교 시각으로야 닭이 먼저 아디던가?^^ 아전인수식 내로남불이 아니라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정권의 성격에 따라 희망고문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를 바꿔 나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