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대전충남인권연대로고
대전충남인권연대소개 인권피해신고접수 인권교육안내 미디어 자료실 후원자원봉사안내 참여마당
 

全人權은 김종서(배재대교수) 좌세준(변호사) 장수명(한국교원대 교수)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박노영(충남대 명예교수) 양해림(충남대교수) 강수돌(고려대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기자) 안선영(교육부 학교혁신정책관)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작성일 : 18-09-11 10:04
고용‧성장 중독을 넘어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680  

고용성장 중독을 넘어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강수돌(고려대 교수)

 

이른바 김앤장 갈등이 최근 뉴스를 달구었다. 김은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말하고, 장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말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성장과 분배 사이의 갈등이다.

무슨 말인가? 김동연 부총리는 기업의 기를 살리면서 혁신성장을 해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성공한다고 본다. 반면, 장하성 실장은 국민의 소득과 구매력을 올려야 기업도 활기차게 돌아가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한다는 입장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김 부총리는 아담 스미스의 시장(기업) 논리에 기원을 두는 신고전파 이론(보통의 경제학 교과서) 위에 서 있고, 장 실장은 J. M. 케인스의 구매력 활성화 논리를 근간으로 하는 케인스주의 이론(복지국가 이론) 위에 서 있다. 둘 다 나라 경제를 잘 살리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그 방법론은 현저히 다르다.

김 부총리는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이윤을 많이 획득하도록 국가가 정책적 지원을 잘 해주는 것, 이것이 나라 경제를 살리는 최선의 방법이라 본다. 반면, 장 실장은 단순한 인간적 논리가 아니라,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나 소비자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져야 기업에 산더미처럼 쌓인 상품을 사줌으로써 기업도 활성화하고 나라 경제 전체도 생기를 되찾는다는 방법론이다. 굳이 말하자면, 김 부총리의 방법론은 경제 활황기에, 장 실장의 방법론은 경제 불황기에 통하는 방법론이었다.

그러나 그 실효성은 둘 다 단기적이었다. 활황기의 처방법조차 수시로 닥친 경제의 등락으로 갈팡질팡했고 실업과 빈부격차도 커졌으며 공황도 불렀다. 결국엔 독과점으로 귀결됐다. , 불황기의 처방법은 어떠했는가? 공공고용창출과 구매력증대, 사회보장 및 노동권 강화 등으로 뉴딜이 성공한 듯 했지만, 불황 탈출의 종결편은 역시 (2) 세계전쟁이었다.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 얼핏 보면 둘 다 맞는 말 같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른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공식적으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그리고 공정경제 등 세 가지 축을 모두 다 실현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두 좋아 보이니, 그대로만 되면, 그리하여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왜 이렇게도 일상의 삶은 고달프기만 할까? 정치가들이 말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격차는 너무도 크다. 잘 하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뭔가 시원하지 않다.

그렇다. 자칫 세월만 자꾸 흘러가고,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란 말처럼 촛불혁명을 완수하겠다고 시끌벅적 했지만 결국 그 놈이 그 놈이란 말만 듣고 끝날 것 같아 몹시 불안하다. 더구나 국민들의 속은 끓고 있는데, 민주당은 “20년 집권이란 말로 권력중독증 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굳이 “20년 집권같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좋은 정치를 하기만 하면 국민들은 20년이 아니라 100년 이상 지지할지 모른다. , 집권 기간이란 것은 좋은 정치의 결과인 것이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일단 권력을 잡았다고 스스로 목표로 내세울 일은 아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말이다. 어떤 면에선 좀 뻔뻔스럽다.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촛불혁명앞에 전혀 얻지 못한 것 같아 답답하다. ‘미워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여기도 통하는가?

추운 겨울, 무수한 시민들과 거듭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나 역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진심으로 소망한다고 저절로 성공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사태의 본질을 잘 헤아리고 제대로 된 철학과 제대로 된 방법론을 선택해야 한다. 더구나 대통령이나 정부에서 자주 강조하듯, 진정 패러다임 전환을 원한다면 말이다.

첫째, 고용이나 소득, 성장의 중장기적 흐름을 읽어내면서 그것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데 최근 통계 논란은 지나치게 단기적 시각에 매몰되어 있었다. 더구나 보수 정당이나 보수 언론이 만드는 프레임에 무의식적으로 말려든 감이 있다. 일례로, 월별 고용 증가와 같은 통계는 큰 의미가 없는데도 그것가지고 몇 날 며칠을 보수 야당과 설전을 하느라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소득 격차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체 사회에서의 부의 격차가 더 중요한데 그것은 놓치고 단지 근로소득 내 격차만 갖고 이야기하는 좁은 게임장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전체 사회에서 땅, , , 힘이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고 갈수록 운동장이 기울어지는형국인데, 이걸 문제 삼아서 근본적으로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 기울어진 아래쪽 영역 안에서의 불평등(근로소득 격차)만 논해 봐야 힘만 빠지고 별 얻을 게 없다.

둘째, ‘김앤장은 겉으로는 완전히 다른 입장 같지만, 실은 성장 패러다임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하나는 소득주도성장, 다른 하나는 혁신성장 아니던가? 하나는 사람 중심, 다른 하나는 기업 중심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실은 모두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갇혀 있다. 그러나 최근의 저성장 내지 마이너스 성장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설사 외국에서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을 과거처럼뽑아낼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 있어서는 그러한 생명력이 고갈되어 간다. 인류 전체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수십만 년 이상 살아온 이 지구의 자원을 특히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인들이 약 300년도 못되어 거의 소진시키고 있다. 보통 일이 아니다. 이것은 인류, 특히 후손들에 대한 범죄다.

이는 파이의 성장이냐 파이의 분배냐 하는 줄다리기를 넘는, ‘파이의 원천문제를 제기한다. 성장 강박증(성장 중독증)에 빠지면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 현실은 자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말이다. 최근의 폭염, 가뭄, 홍수, 지진 등으로 인한 죽음이나 참사들은 그동안 인간이 지구에서 무한성장을 위해 지구를 함부로 대해온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석유 등 자원고갈은 물론, 원자력 발전소와 핵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경우, 이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중독증이 중하다. 이제 진정한 패러다임 변화를 원한다면 더 이상 성장 패러다임이 아니라 성숙패러다임으로 이행해야 한다. 그래야 자멸 내지 공멸의 길을 지혜롭게 피하고 공생과 행복의 길을 열어낼 수 있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그 길이 옳다. 그저 가던 길을 갈 게 아니라, 이젠 옳은 길을 가야 한다.

셋째, 앞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땅, , , 힘이 불평등한 게 문제라 했다. 그러나 과연 이 불평등한 분배만 공정하게 해소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아니다.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중요한 건 땅, , , 힘에 대한 기본 시각, 즉 철학을 바꾸어야 한다. 우선, 땅을 보자. 오늘날 땅은 재산증식의 지름길인 부동산 상품으로 변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물가인상과 상대적 박탈감, 빈부 격차, 스트레스 증가, 서민 주거 불안, 개발 광풍, 난개발, 미세먼지, 건물 붕괴(싱크홀) 등이다. 땅이 부동산으로 취급되는 패러다임은 인간이 영혼을 잃어버리고 만 속물주의의 결과다.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은 땅을 다시금 어머니 대지로 보는 시각에 있다. 생각해 보라.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밥상에 오르는 것은 모두 땅(, 바다 포함)에서 나온다. , 즉 흙과 강과 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우리 밥상이 차려진다. 그러나 현재의 부동산 개념은 이 땅의 건강성을 죽인다. 흙과 강과 바다가 죽은 뒤, 그렇게 해서 부동산으로 번 돈뭉치만 들고 과연 우리는 먹고살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집, , (권력)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집 역시 부동산이 아니라 주거 개념으로 바뀌어야 하고, 돈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돈은 행복한 살림살이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권력)은 민초들 내부에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의 내용을 말로만 외쳐선 안 된다. 정치가나 행정가들은 힘을 가진 국민의 심부름꾼일 뿐이다. 물론, 그 국민은 다양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성장 패러다임은 모두를 공멸로 이끌기에 성숙패러다임을 국민 대부분이 동의하고 따르도록 나라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더 망하기 전에 기존의 부정부패와 적폐청산을 더 서두르되(적폐들이 가진 불법과 탈세 등만 확실히 잡아내도 1년 안에 모두 정리 가능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성숙패러다임으로의 진정한 전환을 위해 철학과 방법론을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런 진지한 노력 없이 “20년 집권운운하는 것은 권력 중독증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