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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15 14:14
촛불 이후 체제 구상 2: 직접민주주의의 도입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723  

촛불 이후 체제 구상 2: 직접민주주의의 도입

 

김종서

배재대학교 공무원법학과 교수

kjsminju@gmail.com

 

  2008년에 이어 2016년에도 광장에서 시민들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불렀다. 촛불시민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민주국가인 동시에 공화국이 되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 속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주권을 온전히 행사하기를 바라고 있다(“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주권자인 국민은 주권 회복과 주권 회수를 외쳤고 대의를 철회할 수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헌법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권력구조의 민주적 재편을 의미하는 것이다(“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권력구조의 민주적 재편’을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가 필요하다. 직접민주주의의 현실화와 대의민주주의의 정상화가 그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재개와 관련하여 공론화위원회라는 형식의 실험을 통해 살짝 선을 보였던, 이른바 숙의민주주의의 제도화까지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민주주의가 현실적 제도로서 도입・시행되고 대표를 통한 권력행사와 권력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대의민주제가 제대로 움직이며, 국가의 주요한 의사결정과정에 국민이 OX 선택이 아닌 제대로 된 정보에 입각한 판단을 형성해 가는 숙의민주주의가 결합된다면, 이제 우리는 나는 촛불시민들이 그렇게도 소리 높여 외쳤던 질문 ‘이게 나라냐?’에 대하여, “이게 나라야!”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 여기서는 그 중 첫 번째이자 광장에 섰던 촛불시민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요구했던 직접민주주의의 현실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2016-2017의 약 5개월간 촛불항쟁을 통하여 시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엄청난 수의 시민들이 전국의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 한, 헌법재판소가 움직이지 않는 한, 헌정파괴범죄를 저지른 자를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국민의 힘으로 퇴진시킬 수도 처단할 수도 없다는 무력감과 안타까움이었다. 주권자를 자처했고 또 그게 헌법이라고 믿었던 우리 시민들은,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이 내려졌을 때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지만, 정작 ‘그들의’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국회 앞에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촛불을 들면서 마음 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적어도 미래를, 새로운 공화국을 설계한다(‘이게 나라다!’)는 관점에서 촛불시민들이 광장에서 가장 강력하고 열정적으로 요구했던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최고권력인 주권을 당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을 위임했으므로 위임된 권력이 사유화되거나 오남용 될 경우에는 당연히 주권자인 국민이 그 권력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우리는 국민소환제로 대표되는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었다.

 

  대의제의 문제점이 본질적으로 주권보유자와 주권행사자의 분리에서 온다고 할 때, 이를 시정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주권자가 곧 통치자가 되는 것, 즉 국민이 직접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국민주권론과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놀랍게도 국민주권과 대의제가 스스로 부정해 왔던 직접민주주의와 결합하는 것뿐임을 근대 이후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해 왔다. 물론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와 전면적 시행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예컨대 신중한 심의가 결핍된다는 점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동원되거나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 직접민주주의의 치명적 결함으로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 이루어진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및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시민 주도 헌법 개정 과정을 보면 이러한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함이 입증되었다고 할만하다. 오히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의 문제야말로 현실적 난관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 점 역시 대의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스템이 초래하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떠올려보면 그리 문제가 아님을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다. 시민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터무니없는 사업에 돈을 쏟아 붓거나(4대강사업)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 사례(경주핵폐기물처리장)가 허다함을 고려해 보면,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통한 시민의 참여는 최소한 장기적 관점에서는 정책결정상의 오류를 최소화하고 예산 낭비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저비용 고효율의 합리적 보완책이라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미디어, 다양한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이용한 성공적인 시민 직접참여 사례가 세계 각처에서 점점 더 많이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인 시민참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각국의 사례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시민은 일상적 상시적으로 의제를 제기하고 그 제안을 집단토론과 표결에 부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시민의 합의 결과는 정치와 행정에 신속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셋째, 모든 공공정보는 공개되어야 하고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공문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쉽게 기록되어야 한다. 다섯째, 다양한 집단별 자치가 존중되고 소수자의 발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여섯째, 집단의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수평적 의사결정구조가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곱째, 시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대변할 정치적 주체를 만들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항목들은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기 위한 전제나 선결조건이라기보다는 직접민주주의와 결합된 21세기형 민주주의의 궁극적 목표 또는 그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들은 국민소환제, 국민발안 및 국민표결 등 직접민주주의적 제도의 도입 시행과 관련해서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다.

 

  현재까지 국회는 개헌특위를 중심으로 헌법 개정을 위한 일정을 발 빠르게 추진해 왔다. 국민의 의사를 얼마나 읽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전국 순회토론회까지 마친 상황이다. 정부 역시 적극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기념사를 시작으로 최소한 세 차례 이상 내년 지방선거에서 실질적 분권화 등을 목표로 한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어야 함을 강조해 왔다. 이들 정치권의 움직임으로 보면 헌법개정, 즉 개헌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실 국민들 사이에서는 개헌이 국회나 대통령의 발언이나 행보에서처럼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개헌이라는 주제를 대할 때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은 지난 70년 헌정사에서 10번에 걸쳐 이루어졌던 헌법의 제정과 개정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모든 제헌과 개헌의 과정에서 주권자의 의사와 참여가 철저할 정도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시민들의 저항과 항쟁을 통하여 이루어졌던 1960년의 3차 개정 헌법이나 1987년의 9차 개정 헌법의 입안과정에서조차도 항쟁의 주역인 시민들은 거의 완전히 배제되었다. 지금 요구되는 것은 절차적으로는 헌법개정과정이 국민의 참여와 국민의 주도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실체적으로는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한 내용을 담은 헌법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러한 절차와 내용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내년 6월 지방선거일로 국민투표 시점을 못박아두고 하는 개헌은 또 다시 주권자가 배체되는 개헌으로 귀결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가 매우 강력하게 내년 개헌일정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 엄연한 현실임을 무시할 수만도 없다. 우리 주권국민들은 이런 조건하에서는 어떤 개헌이 가능할 것인지 또 바람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방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즉 국민의 광범위한 참여와 주도, 그 의사가 반영되는 개헌, 즉 최대개헌이 “이게 나라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 설계의 올바른 방향이지만, 내년 6월까지라는 매우 짧은 기간 내에, 민주공화국 재설계를 1차적으로는 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것인가 하는 최소개헌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년 6월까지 단 하나를 신설하거나 변경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도 우리는 갖고 있어야만 한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시행’을 제시하고 싶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단 하나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광장의 요구 그 자체, 즉 국민이 진정한 주권자가 되는 방안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촛불항쟁의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이 국민소환제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에 좀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은 소환제 요구가 한국에만 특유한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라는 점이다. 특히 이 점은 근대 민주주의의 발원국이면서, 늘 ‘의회’주권을 강조해 온 영국에서 제정된 ‘2015년 하원의원소환법’(2015. 3. 26. Recall of MPs Act 2015)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성문헌법이 없고 국민주권이 아니라 의회주권이란 말이 더 애용되는 나라에서 주권자인 의회의 구성원을, 그 임기 중에 유권자가 소환하는 법을 제정하였다는 것은, 대표를 통한 주권 행사라는 근대국가의 주권 원리에 일대 변경이 요구되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린 세계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을 가능하게 하려는 법률안이 다수 제안되었다. 2016년 구성된 제20대 국회에는 3건의 국회의원 국민소환 법률안이 제출되어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서 직접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이었기에 이들 법률안은 시민들의 바람과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촛불시민들이 원하는 국민소환은 어떤 식으로 제도화될 수 있을까?

 

  대통령 소환 제도를 둔 나라는 베네수엘라와 대만 정도인데, 대만의 경우는 국회의 발의로 제안되고 국민투표로 소환을 결정하는 방식인 반면 베네수엘라는 소환 투표는 물론 소환 발의 자체도 국민이 하도록 되어 있다. 두 제도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대만식의 제도는 국회의 발의가 없는 한 국민소환권이 발동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 반면 소환발의와 소환투표라는 두 번의 복잡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직접민주주의적 요청에 가장 충실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소환의 발의와 결정을 위한 절차적 어려움과 비용의 문제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 헌법은 대통령 등 공직자에 대한 탄핵제도를 두고 있으므로 탄핵과 소환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설정할 것인지도 고민거리다. 하지만 탄핵의 불법에 대한 소추 또는 징계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책임추궁제도라면 소환은 신뢰 배반에 대한 주권국민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탄핵은 탄핵대로 유지하되 소환제도는 이와 별개로 도입되어야 한다. 그 발의와 소환 방식은 1972년 이전 우리 헌법들에서 헌법개정안 발의를 위하여 요구했던 수준, 즉 국회의원선거권자 50만인 이상의 발의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 또는 유효투표 중 다수의 찬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헌법개정안 발의는 국회의 의결을 거쳐서 국민투표로 이어지지만 소환의 경우는 발의가 곧바로 국민투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발의요건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행 지방자치법상 단체장 소환 발의의 요건이나 유권자의 20%를 발의요건으로 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예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와 함께 탄핵절차에 대해서도 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소개헌을 이야기하면서 탄핵절차까지 건드리기는 어렵지만, 이야기가 나온 김에 두 가지 점만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첫째, 국민대표인 국회의 절대다수에 의하여 이루어진 탄핵소추의 수용 여부를 선출되지 않은 9명의 법복귀족에게 맡기는 일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즉 탄핵소추는 현재대로 국회에서 하는 방식을 유지하되 탄핵결정은 헌법재판소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점은 주권자인 국민의 투표로 탄핵(소환) 여부를 결정하는 만큼 탄핵소추의결을 위하여 헌법 개정에 필요한 것과 동일한 의결정족수(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며, 재적 과반수의 찬성이면 충분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탄핵제도의 정비와 소환제도의 도입이 함께 할 때 국민은 진정한 주권자의 지위에 성큼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소환은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일단 객관적으로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뒤에 그 공직자를 쫓아내는 것이지, 그 잘못된 결정을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피해는 그 권력자가 아닌 국민이 고스란히 져야 한다. 잘못된 결정의 책임자를 소환할 수 있다고 그 결정에 따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면, 소환 단계에 이르기 전에 최소한 국가의사에 대한 결정과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결정과 자기책임의 원칙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주권자가 스스로 법률 제정을 비롯한 국가의사 결정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발안과 국민표결이다.

 

  먼저 국민발안은 정책발의와 그 결정에서 국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일정 수 이상 국민의 요구에 의하여 헌법안, 법률안이나 정책이 발의되면 의무적으로 국민투표에 붙여져야 하고 그 투표에서 다수가 동의하면 헌법·법률 등이 확정되거나 정책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즉 국민투표가 필수적이면서 구속적이라는 점에서 국민발안은 집단적 청원권 행사와 다르다. 또한 이는 국민투표로 결정되어야 할 사안 자체의 선택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이므로 국가기관이 선택한 사안에 대해 가부결정만을 하는 국민표결보다 훨씬 더 능동적이고 민주적이다.

 

  현실적으로 이들 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헌법개정안이나 법률안의 발의 제출권을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만 인정하고 있는 헌법조항(제52조)의 개정이 필요하고, 정기적이면서도 효율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도록 기존 선거와 함께 실시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발안제도가 자칫 중우정치적 형태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세워 이를 반대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즉 공동체가 오랜 고민 끝에 도입하거나 탄생시킨 매우 훌륭한 제도를, 그에 감정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의 국민발안으로 폐기하거나 무산시키는 결과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 24개 주에서 국민발안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에서 이와 같은 사례는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대표적인 것이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발안들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국민발안이 곧바로 국민투표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의회의 사전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법—이른바 간접국민발안제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발안이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판단을 거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를 직접민주주의적 제도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국민투표를 통하여 위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국민발안제도를 받아들이는 데 따르는 필수적인 비용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무릇 어떤 제도를 새로 시행할 때에는 그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를 구비하여야 하지만, 그러한 부작용이 새로운 제도의 불가피한 결과라면 이는 민주주의의 비용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국민표결은 국가기관의 발의로 국가의 중요한 정책과 법안에 대한 국민의 의사를 투표를 통해 확인하는 것으로서 그 대상은 법률안, 헌법개정안, 정책사항 등이 될 수 있다. 모든 국민표결을 직접적 의사결정제도라고 할 수는 없고, 직접민주제로서의 국민표결이 되려면 헌법이 정한 일정한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투표 실시가 강제되어야 하고, 일단 투표가 실시되면 그 결과는 구속력을 갖도록 하여야 한다(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대통령의 권한으로 실시되는 우리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는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결여하고 있다). 국민표결이 가장 활발하게 실시되는 스위스는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국민소환, 국민발안과 국민표결을 구성요소로 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를 내포하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비용이 들며 직접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적 어려움이나 도입 시행에 소요되는 비용을 이유로 민주주의적 제도를, 직접민주주의적 방안의 도입을 피하기에는 주권국민의 의식이 너무 많이 발전되었다. 광장의 촛불로 권력자를 축출하고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던 우리 주권국민은 직접민주주의의 도입 시행에 필요한 그런 어려움과 비용을 기꺼이 감당해 낼 것이다.

 

  요컨대, 광장의 촛불을 통하여 국민들이 요구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이 참여하고 주도하고 그 의견이 반영되는 국가재설계 작업이고, 이는 제헌 또는 제헌에 준하는 개헌, 즉 최대개헌이다. 그러나 정치적 일정과 상황 때문에 최대개헌이 불가능하고 최소개헌을 할 수밖에 없다면 그 내용은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게 나라다!’라고 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이자 조건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과 같이 정파 간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개헌에 필요한 의결정족수 확보가 어려워 보이는 국회 상황에서 강력한 국민들의 지지로 뒷받침되고 관철될 수 있는, 유일하게 가능한 개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