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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24 16:25
자본은 감정까지 착취한다
 글쓴이 : 인권연대
조회 : 378  
자본은 감정까지 착취한다
- 정진주 외, <감정노동의 시대, 누구를 위한 감정인가?>(한울, 2017)를 보고

글_강수돌(고려대 교수)

  2017년 1월, 전북 전주시의 한 저수지에서 젊은 여성의 주검이 발견되었다. 어느 콜 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이었다. 그녀가 했던 직무 내용은 이른바 ‘세이브 업무’라는 것인데 통신관련 가입자의 해지를 막는 부서였다. 통신 소비자들, 즉 고객들이 특정 회사로부터 계약해지를 하고 다른 통신사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일이었다. 상황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니가 뭔데 내가 해지하는 걸 막으려 들어?” “고객님, 그게 아니고요….” “너 이름이 뭐야? 네 직속 상사를 바꿔 봐!” “고객님, (흑흑) 제발 좀 부탁이어요.” “이게, 이 XX야,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해?” 아마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노동은 고객 서비스 업무라기보다는 ‘감정노동’이었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억누른 채 고객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회사의 이익을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노동이 감정노동이다. 결국, 그녀는 고객의 욕설과 회사의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가 더 이상 참기 어려워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끊고 말았다.

  감정노동과 관련해 한국 사회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 또 있다. 그것은 2014년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다. 미국 발 KAL 비행기 안에서 대한항공 회장의 딸 조현아 부사장이 주문한 땅콩을 승무원이 비닐껍질을 까지 않고 통째로 건네주자 조 씨가 “이게 매뉴얼에 맞는 거냐?”며 승무원에게 소리치고 심지어 항공책자로 때리기까지 했다. 나아가 이미 이륙을 위해 출발해 이동 중이던 비행기마저 (불법적으로) 원 위치로 되돌려 해당 승무원을 내리게 했다. 공항이 있던 미국 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이 일이 알려진 뒤 여론이 들끓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객들의 갑질에 그저 미소로 견뎌야 하는 승무원들의 감정적 스트레스 문제가 사회적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해당 승무원은 그 일로 말미암아 단순한 스트레스를 넘어 우울증세까지 나타내 결국 산재 인정까지 받았고, 나아가 재벌들 황제경영의 폐단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까지 나타났다며 재벌에 대한 여론이 악화, 재벌 개혁의 필요성이 더 커지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곳에 갔을 때 그 입구에서 직원들이 “고객님, 사랑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라며 허리 굽혀 절하는 모습 역시 일상적으로 보는 감정 노동의 사례다. 또, 비행기만이 아니라 열차를 타고 다른 곳에 갈 때도 열차 승무원이 불필요하게 절을 하거나 심지어 무릎까지 꿇고 고객과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이 모든 사례들은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정작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억눌러야 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감정이 상품화한 것이다.
  과연 이러한 감정의 상품화는 어떤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일어나는가? 그리고 이 감정노동은 당사자들의 심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과연 유통업, 콜 센터, 금융권, 병원, 공공 서비스 등 각종 분야들에서 감정노동은 어떤 양태로 드러나는가? 나아가 감정노동 및 작업장 폭력은 어떻게 측정되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어떤 방법으로 대처하는가? 그리고 감정노동으로 상처 입은 노동자들은 어떻게 치유가 가능하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어떤 식으로 마련되어야 할까?

  사회건강연구소가 기획하고 정진주 박사 외 다수의 연구자가 집필한 <감정노동의 시대, 누구를 위한 감정인가?>(한울, 2017)는 바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원래 사회건강연구소는 몸, 마음, 사회의 건강을 위해 다학제적으로 연구, 교육하는 민간기관으로 다양한 네크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일터에서의 건강 및 젠더와 연관된 건강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감정노동에 관해 깊이 있는 진단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 책 또한 이러한 연구 활동의 자연스런 산물이다.
  이 책의 제목대로, 과연 감정노동은 누구를 위해 이뤄질까? 그 답은 결코 당해 노동자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누구일까?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고용주, 즉 자본이다. 그렇다면 왜 자본은 노동자에게 감정노동을 시킬까? 그것은 ‘고객’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돈벌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같은 돈을 내고도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예, 식당이나 백화점)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면 과연 어디를 다시 또 가겠는가? 답은 뻔하다. ‘손님’의 기분을 좋게 하는 곳이 장사가 더 잘 될 것이다. “서비스 노동자는 고객으로 하여금 자율적 선택과 권력의 쾌락을 느끼게 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일반 상업이 아닌 경우, 즉 공공서비스는 어떤가? 여기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정부 기관이건 공기업이건 고객인 시민들이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공무원인 노동자들이 본의 아니게 감정노동을 하기도 한다. 왜? 여기서는 직접 돈벌이가 아니라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또는 나쁜 평가나 민원 제기를 받지 않기 위해서) 감정노동이 이뤄진다. 공공서비스 기관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결국 다음에 예산/인센티브/자리를 확실히 보장받거나 최소한 잘리지 않음을 뜻한다. 직접적인 돈벌이는 아니지만 결국은 평가가 돈으로 연결되고 만다. “현재 공공 영역에서는 ‘공공 행정 서비스 품질’을 점수로 환산해 평가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민원 행정 분야 정부 합동 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민원 담당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에 대해 별도의 친절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기제를 활용하고 있다.”
  결국, 오늘날 우리는 사회문화적 규범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감정의 상품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 ‘감정의 상품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성에서 감정으로 머리에서 몸으로 사회적 관심이 이동하면서 후기 근대 사회의 감정이 점차 자본주의적 생산의 도구이자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되어버린 현상이다. 

  바로 이 감정의 상품화를 배경으로 돈 주고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이 ‘왕’ 대접을 받는 과정에서 감정노동이라는 사회적 맥락이 형성된다. 전술한 콜센터 실습생이나 ‘땅콩 회항’ 사건 속의 승무원은 모두 감정노동의 희생양이었다. 즉, 감정노동자들은 자신의 진정한 느낌이나 감정을 억압하고 ‘고객’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 억지웃음이나 과잉 친절을 드러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내면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이것이 지속되는 경우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소진(번 아웃)을 경험하기 일쑤다. 특히 ‘왕인 고객’들로부터 이른바 ‘갑질’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경우, 우울증이나 자살까지 이어질 수 있다. 
  “감정노동과 우울증, 근골격계 질환, 월경곤란증 등과 같은 스트레스성 건강 문제와의 관련성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과도한 감정노동은 스트레스 반응을 통해 다양한 건강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실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감정노동자들이 ‘이중 착취’를 당한다는 것이다. 즉, 감정노동자들은 한편으로 고용주로부터, 다른 편으로는 고객들로부터 육체적‧정서적 착취를 당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고용주들은 감정노동자들이 고객들에게 육체적‧정서적 착취를 당하는 것을 묵인‧동조‧권장‧강제함으로써, 은근슬쩍 감정노동자와 감정소비자들을 동시에 착취‧지배한다. 따라서 이들 감정노동자들이 느끼는 노동소외는 전통적인 생산직 노동자들이 경험하던 노동소외보다 한층 심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주 내지 그를 대리하는 관리자들이 서비스 노동자들에게 감정노동을 사실상 강요하는 까닭은 결국 이윤 때문이라는 점은 앞서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고객들이 서비스 노동자들을 감정적으로 착취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차가운 계산기>를 쓴 필립 로스코가 말하듯, “돈 주고 구매하는 행위야말로 오늘날의 삶을 규정하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비자가 되어 상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용-편익 분석’을 행한다. 이는 <하류지향>을 쓴 우치다 타츠루가 말한 ‘등가교환 법칙’과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소비자로서 사람들은 자신이 지불하는 화폐 가치와 동일하거나 그보다 더 많은 가치를 얻기 위해 치밀한 계산을 하고 협상과 흥정을 벌이는 등, 자기 이익 중심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소비자인 고객들은 서비스 노동자들을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착취하게 된다.

  이제, 이 감정노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개인적으로 과도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고 또 동일한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감정노동 자체를 적절히 규제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법과 제도, 가이드라인 등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엄격히 준수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감정노동의 현장에서부터 이를 정확히 측정하고 진단하기 위한 측정도구의 개발과 적용, 전 사회적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또, 과도한 감정노동이나 작업장 폭력 등으로 인해 일종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노동자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도 체계적으로 가동될 필요가 있다. 물론, 기존의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가 감정노동의 문제에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또는 ‘서울시 여성이 만드는 맘 편한 세상’과 같은 연대 활동을 더욱 왕성하게 전개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인 노사관계만이 아니라 노동자와 소비자와의 관계인 노소관계를 근원적으로 재정립하는 일이다. 그래야 전술한 ‘이중 착취’가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선 더 많은 토론과 실험이 필요하겠으나, 그 원칙적 방향은 노사 또는 노소 사이에 더 이상 ‘착취 및 지배’ 관계가 아니라 ‘호혜 및 연대’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놓여 있을 것이다. 분명한 점은, 이를 위해서라도 전술한 ‘비용-편익 분석’이나 ‘등가교환 법칙’에 기초한 자기 이익 극대화 지향적인 행위를 지양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내가 내 감정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것처럼, 타인 또한 자기 감정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런 자기 감정의 주인공들이 서로 존중하면서 교류한다면 더욱 인간적인 공동체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과연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감(empathy)의 능력을 (재)가동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