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트럼피즘’ 시리즈 흥미로웠짐난 제3세계 이야기도 듣고싶어
콘텐츠 발굴, 부서간 협업 통해 다양한 심층·분석 기사 썼으면
특파원들이 현지인과 더 만나길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열려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제사회가 혼돈 속에 빠져 있다. 지난해 12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두 달 새 수없이 많은 뉴스거리를 쏟아내며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유럽연합의 균열 조짐과 극우 포퓰리즘 득세도 심상치 않다.

한겨레 열린편집위원들은 격변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한겨레가 심층기획으로 다룬 ‘트럼피즘, 세계를 흔든다’ 연재 보도와 특파원 칼럼 등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국제뉴스의 비중을 좀 더 높이고 강대국 정치 중심 보도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심층적인 고급 뉴스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회의는 지난 13일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정현백 위원장 국제뉴스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이승열 위원 요즘 국제사회에 심각하고 중대한 사건이 많다.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 한겨레 국제면을 보면 대부분 트럼프 이야기다.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 쏟아낸 발언과 정책은 매우 충격적이며,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의 많은 사안에 영향을 미친다. 국제뉴스가 트럼프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한다. 그리고 한겨레가 외교·안보, 경제, 중-미 관계 등을 주제로 심도 있는 ‘트럼피즘’ 기획 시리즈를 낸 것은 시의적절한 편집이었다.

하지만 국제뉴스가 미국에 편중돼 다양성을 외면한 측면이 있다. 일본과 중국 뉴스는 종종 나오지만 다른 나라들의 시각이 많이 다뤄지지 않아 아쉽다. 독자들도 나라 밖의 불확실성과 혼돈에 불안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이 현상을 정확히 진단하고 전망을 보여주는 눈이 필요하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방식의 다각화, 다각적 관점의 국제뉴스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상재 위원 국제면은 (독자와의) 이해관계가 없으면 자세히 보지 않는다. 최근 1주일치 한겨레 국제면을 보면, 미국과 트럼프에 편중됐고 강대국 중심이다. 중국, 프랑스, 독일, 호주 뉴스도 트럼프와 관련된 것들이다. 트럼프 딸 이방카의 패션 브랜드 같은 이야기는 좀 선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한겨레 지면에서 제3세계 뉴스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기사와 인도네시아 부패 문제 등 극소수였다. 프랑스 대선 국면에서 극우파 마린 르펜(국민전선 대표) 이야기는 잘 봤다. 미얀마 뉴스를 다루긴 했지만, 이슬람국가(IS)나 인권 문제도 넘쳐나는데 지면에는 적게 나와 아쉽다.

백미숙 위원 시선을 끄는 사진 뉴스들을 관심 있게 보게 된다. 트럼피즘 시리즈를 통해 각국 반응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세상을 다각도로 보는 시선은 한겨레의 힘이다. 그러나 트럼프 관련 기사가 쏟아지다 보니 피로감도 든다. 그럴 땐 칼럼을 읽으면 차분해진다. 슬라보이 지제크, 홍세화, 그리고 특파원 칼럼 등은 기사에 쓰지 않은 뒷이야기나 필자의 관점을 볼 수 있어 즐겁다. 기사가 사실들을 보여준다면, 정돈된 시각을 담은 사설과 칼럼은 국제뉴스를 볼 때의 혼란스러움을 덜어준다.

이승희 위원 독자들은 한겨레가 국제 현안들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는지 기대감이 있다. 스위스 기본소득,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트럼피즘 기사들을 보면서, 한겨레가 ‘세계화’에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 궁금해졌다. 한겨레는 그런 현상들을 ‘세계화에 대한 저항’으로 보는 것 같은데, 이는 내가 보기에는 근본주의적이고 단선적인 분석 같다. 세계화 문제를 ‘자본 이동’으로만 보면 서구 강대국의 금융 약탈에 방점을 두게 된다. 하지만 노동(력)의 세계화나 이민 문제 등은 또다른 독립적 의제다. 대중은 변화를 원하며, 좌파 정당들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도 식상해한다.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는 이를 ‘진보의 실패’라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트럼프 지지 현상’을 비판적으로 쓰지만, 맥락에 대한 설명은 부족해 보인다. (한겨레가) 한 가지 관점을 소개하고, 사실상 강요한다는 느낌도 받는다(웃음). 국제뉴스를 보는 관점은 독자마다 다를 수 있다. 다양한 시각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런 와중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 쪽이 연방지방법원의 ‘반이민 행정명령 중지’ 결정에 대해 항소심 법원과 법리 논쟁을 벌이는 기사를 재밌게 봤다. 워싱턴주가 행정명령을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논리가 뭘까, 방어는 어떻게 할까 궁금했는데, 기사에 판사와 변호사의 (심리) 대화 내용을 현장감 있게 그대로 전해줘 좋았다.

홍성일 위원 국내 신문사의 10년 전과 2017년의 국제면을 비교하면 어떨까? 거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상은 많이 바뀌었다. 소셜미디어로 외국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고, 훨씬 더 많은 해외 뉴스를 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세계를 체감하게 된 만큼, 국제뉴스도 이런 흐름에 뒤처지지 않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예컨대 소녀상 문제를 보자. 국제면에서 일본 정부와 언론 반응을 다루긴 하지만 실제로 일본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 필리핀에서 한국인 사업가가 피살됐다던데 도대체 필리핀 교민들은 어떻게 생활하는 건지도 궁금하다. 물론 특파원이 적고 취재인력의 한계가 있다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국제뉴스를 피부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된 만큼, 국제뉴스 보도도 예전의 관행에서 벗어나 독자의 눈높이와 기대치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국제면 뉴스는 강대국 중심의 국제 정치 질서 중심이다. 지금도 거기에 큰 비중을 둬야 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원장 국제면이 너무 적고 소홀하게 취급된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독일 등 주요국 언론들은 국제뉴스로 먼저 시작한다. 그들은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고 ‘글로벌 정치’를 한다는 관점이 있다. 또 독일의 경우만 해도, 국내 부문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늘 예측 가능하고 큰 변화가 있기 힘들다. 반면 우리 언론은 전반적으로 너무 ‘한국화’되어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중요 뉴스는 1면부터 수개 면을 펼치고, 한참 뒤의 국제면에도 간다. 또 국내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을 매일 너무 자세하게 싣는 것 아닌가?

국제뉴스도 미국, 일본,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 순으로 배정된 것 같다. 그 중요성에 견줘 중국 뉴스가 적은 반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바캉스 간 것까지 지면에서 다룰 필요가 있었나 싶다. 특파원들이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발굴하고 심층 기사를 제공하면 좋겠다. 유럽에도 특파원을 둘 필요가 있지 않나? 중국의 엘리트 지형이 50대로 젊어지고 있는데, 이들은 북한에 대한 태도도 윗세대와 다르다. 그런 흐름이 외신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권태호 국제에디터 다양한 소식, 다양한 시각이 아쉽다는 지적은 아프게 듣겠다. 국제뉴스의 다양성을 고민하지만, 한국 언론에서 국제뉴스의 우선순위는 △한국과의 연관성 △국제적 중요도 등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고, 한정된 지면에 한정된 기사를 우선순위에 따라 배치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미국 중심으로 국제면이 구성됐다.

분석 기사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잘 알겠다. 심층 분석 기사는 며칠 전 사안을 다시 다루게 되는데, 이것은 (새) 뉴스는 아니다. 1개면밖에 안 되는 지면 운용에서 ‘오늘 뉴스’를 빼고, 며칠 전 ‘심층 뉴스’를 얼마나 써야 하는지 늘 고민하게 된다. 또 ‘심층 뉴스’는 며칠 전부터 준비해 제대로 쓰지 않으면 심층적이지도 않고 뉴스도 아니게 된다. 기사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루는 방식으로 부족한 점을 메워가도록 하겠다.

현장기사 부족을 메우기 위해 특파원이 없는 지역에선 통신원도 활용하고 연수 중인 기자들을 현장에 보내보려 하기도 하는데, 둘 다 제약이 많다. 중국 뉴스는 더 많이 싣도록 노력하겠다. 다만 중국의 경우 미국·일본과 달리 언론에서 새 소식을 얻기 힘들고, 정보원 접근도 거의 불가능한 어려움이 있다. 중국 사회상 등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회성 기사라도 자주 쓰도록 하겠다.

이승열 거의 모든 언론사가 편집국(보도국) 안에서 부서 간 장벽이 있는 것 같다. 국제부가 정치부나 경제부 등 다른 부서와 협업해서 공동취재를 하면 훨씬 밀도가 높고 다른 언론이 쓸 수 없는 기사를 만들 수 있는 사안도 있을 텐데, 부서 간 장벽이 커서 그런 협업이 안 이뤄지는 것 같다.

위원장 국제면 기사는 아니지만 최근 기획기사로 다룬 것 중에 ‘아일랜드 풀뿌리 민주주의’(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81923.html)처럼 좋은 기사들도 봤다. 국제뉴스의 좋은 아이템들에 대한 기획 보도들을 잘 활용해보면 좋겠다. 권태호 에디터의 설명 중에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 부분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가능한 한 국제뉴스의 퀄리티를 더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승희 1995년 미국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반대 시위가 벌어졌을 때 미국의 한 시민단체에서 인턴을 했다. 나는 우리나라 동포보다 현지인들을 많이 만났다. 미국도 현지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어서, 한 사람을 만나면 더 많은 취재원들과도 연결돼 풍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조일준 기자 ‘국제뉴스라는 게 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제사회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적 관계나 국제 외교·안보뿐 아니라 국제기구, 인권, 과학, 성(젠더) 등 수많은 이슈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국제뉴스를 어떤 시각으로 다뤄야 하는지 고민이 있다. 사람들이 국제뉴스를 볼 수 있는 통로와 방법도 많아졌다. 의지가 있고 외국어 독해 능력만 있다면 직접 외신 인터넷 사이트를 가서 볼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 책, 개인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여행기 등도 넘친다. 문제는, 국제 관련 정보들이 산재하고 파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그런 정보들의 맥락과 배경을 정리해서 핵심을 보여줄 수 있다. 특히 당대의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거대한 ‘글로벌 트렌드’를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임석규 에디터 10년 전 국제뉴스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저널리즘과 미디어 산업이 처한 본질적 위기와 관련 있다. 이젠 국제뉴스를 접할 수 있는 수많은 통로가 있다 보니, 일반적인 발생 뉴스는 다음날 지면에서 보도 가치가 떨어져 버린다. 속보성 뉴스에 ‘플러스 알파’가 들어 있는 국제기사를 써야 하는데, 날마다 모든 기사를 그렇게 쓰기에는 제약이 있다.

독자 조사를 해보면 국제뉴스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리고 사회가 역동적이어서 국내 뉴스가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국제뉴스를 1면, 2면에 비중 있게 실었다가도, 야간에 중요한 국내 뉴스가 나오면 뒤로 밀리는 일이 잦다. 한겨레도 지면 개편을 할 때마다 국제뉴스를 전진 배치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국제뉴스의 비중 강화와 전진 배치 문제는 앞으로 지면 개편 때 다시 논의될 것이다.

위원장 어쩌면 국내 독자와 기업들에는 제3세계 뉴스와 정보에 대한 수요가 더 클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겨레가 국제뉴스를 더 강화하는 방안을 찾고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