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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공무원의 죽음에 관한 단상

작성자인권연대 작성일13-04-12 19:08  |  1,707 읽음

글 _ 김세진(사회복지사사무소 ‘구슬’ 소장)


  지난달 우리 사회의 뜨거웠던 이야기 중 하나가 연이은 사회복지 공무원의 죽음입니다. 먼저 우리 사회의 약자를 위해 일하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실제 사회복지 공무원의 업무가 많다는 이야기는 늘 있었습니다. 2001년부터 만 7년을 지역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 업무적으로 자주 만났던 공무원들은 한 결 같이 밀려오는 업무 때문에 화장실 다녀올 틈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13개 중앙부처 292개 복지업무가 일선 사회복지 공무원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깔때기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고, 여기에 신규 복지사업들까지 집중되면서 이런 참극이 벌어졌다는 게 사회복지계의 진단입니다. 그러니 줄지어 이어지는 여러 기관이나 단체의 성명 속에는 사회복지 공무원, 아니 사회복지계 전체의 사회복지사 처우개선 이야기가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근본적인 개편을 주장하는 내용도 그 핵심은 적절한 인력의 충원입니다.


  또한, 노동 강도와 비교하면 적절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꽤 자주 언급됩니다. 특히 민간 사회복지사의 실질 임금 수령액을 비슷한 연차의 복지 공무원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일도 중요한 처우개선 내용 중 하나입니다. (어느 조사에서는 사회복지사의 평균 임금이 비슷한 노동 강도와 업무 특수성을 고려할 때 다른 직업의 64%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복지계의 여러 일자리를 평균 임금에 따라 수직으로 배열했을 때,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 공무원도 이렇게 자살을 선택하는데 민간 사회복지사들은 오죽 힘들겠냐고도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상황의 해석이 달라지니 현실의 변화를 위한 운동의 방법이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런 민감한 시기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저는 연이어 벌어지는 사회복지사의 죽음을 우리가 처한 특수한 현실이나 우리만 차별받는 구조로 이해하는 데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것도 약자를 위하는 사회복지계가 말입니다.


  몇 년 전에는 지하철 기관사의 자살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컴컴한 지하에서 홀로 기관실에서 운전하면서 승객의 안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에 죽음을 선택했을 거라고 합니다. 교사의 죽음도 비슷했습니다. '근무성적평정'이라는 것이 교사들의 목을 조인다고 합니다. 여기에 과도한 행정 업무까지 겹치면, 학생들을 돌아볼 틈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또 어떨까요? 이제는 학생이 어디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에 놀라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회복지 현장에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다들 똑같이 힘드니 엄살 부리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가 이런 일들의 뿌리일 수 있습니다. 그 문제가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직업에서 이 같은 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죽음의 행렬은 지금과 같은 구조 안에서는 언제든 다른 직업군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일의 해법을 특히 적절한 보수를 받게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만 잡고 나아가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인원을 충원한다고는 하지만, 인원이 넉넉한 현장, 적당한 현장은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다른 일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게 무섭습니다. 그 일을 놓으면 저 깊은 계곡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공포, 괴로움... 극단적 상황에 몰린 상태에서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사회가 두렵습니다. 그렇게 길들여져 왔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양쪽 눈에 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고, 달리고 있고, 달려가야 합니다. 끝이 없는 경주, 어차피 지게 되어있는 경주인지도 모르지만, 삶의 방식이 정해져 있는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최근에 협동조합에 관한 이야기가 활발해지면서 여기에 참여하는 이들이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 길이 아니다 싶을 때 멈춰 설 수 있는 여유, 잠시 쉬었다 가더라도 그것이 낙오나 실패로 느끼지 않게 하는 사회를 생각합니다. 다른 삶을 상상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 상황, 잠깐이라도 멈추는 걸 허락하는 않는 사회에 먼저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런 성찰이 앞서지 않아 아쉽습니다.


  이웃을 돕는 일조차 '경쟁'하게 하는 상황, 제 마음도 심란하고 복잡합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자주 찾는 권정생 선생님의 <빌뱅이 언덕>을 다시 펼치니 '낮에 여덟 시간 일하고 밤에 책을 읽고 가끔 이웃끼리 모여 정담도 나누고 걱정도 나눈다면 세상은 그런대로 평화로워질 것이다.'라는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나부터 이렇게 살아보는 게 근본적 해법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제일 어려운 혁명이 내 안의 혁명 아니던가요?


  '인권만사'에 글 쓸 기회가 오면 이번에는 약자를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사의 구체적 활동 관점과 그 방법에 관해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곳에서 이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자기 가족과 멀어지고 이웃과 만나지 못한다면, 그래서 또 누군가가 다시 이런 상황에 놓인 그를 도와야 한다면, 이런 소모적이고 허망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사회복지사부터 일을 줄여야 합니다. 함께 나누며 살자고 제안하는 말에 힘이 실리려면 먼저 우리부터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경험하여 체화하지 못했으니 이웃과 함께하는 일조차 '프로그램화' 하여 이루려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친구를 '친구 만들기 프로그램' 같을 것으로 사귀어 온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일을 줄이는 구체적 방법이 궁금하지요? 저는 배워서 알았고, 또 직접 경험했던 일을 줄이는 구체적 방법이 있습니다. 궁금하면...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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