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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최예린(한겨레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배우는 즐거움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10-13 12:56  |  94 읽음

글_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


중졸 검정고시 시험장이다. 

감독관 교육과 고사 본부에 대기하며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역할을 맡았다. 오늘 시험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홈스쿨링이나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는 중학교 졸업 연령대의 청소년들이다. 그런데 앳된 청소년들 사이에 2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아가씨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저 청춘들은 이제서야 중학교를 졸업하려고 이곳에 왔을까?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청춘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까르르 밝게 교실로 향한다. 창피해하거나 주눅은 찾아보기 어렵다.


1교시가 끝나고 감독관들이 답안지를 갖고 고사 본부로 모여드는데 할머니 한 분이 감독관을 따라 본부로 들어오셨다. 답안은 겨우 칠을 했는데 수험번호와 과목 코드를 미처 칠하지 못해 감독관이 규정에 따라 할머니를 본부로 모시고 온 것이다. 본부 담당자가 보는 앞에서 인적사항을 마킹하는데 OMR 카드를 처음 접해 봤는지 동그라미 안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칠하는 걸 어려워하신다. 동그라미를 하나하나 짚어 드리며 칠하는 걸 도와 드리는데 색칠하는 손이 덜덜 떨린다. 떨리는 손끝에서 간절함이 쏟아져 동그라미를 함께 채운다.


점심시간이다. 대부분 제 자리에서 도시락을 먹고, 일부는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검정고시는 수능과 달리 시험 중에 고사장 안팎 출입이 자유롭다.)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분이 백팩을 메고 계단을 내려간다. 현관문에서 목을 빼고 학교 안을 쳐다보던 두 여성이 신사를 맞이하러 뛰어 들어온다. 아내와 딸로 보인다. 백발의 머리를 잘 빗어 넘긴 신사가 메고 있던 가방을 아내로 보이는 여성에게 건네고 딸은 팔짱을 끼고 현관문을 나선다. 학교 인근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으려나 보다. 어깨를 쫙 편 신사의 뒷모습이 기분 좋아 보인다. 오전 시험을 잘 봤나 보다.


어떤 이는 졸업장이 필요해서, 또 어떤 이는 배우지 못한 설움을 늦게나마 해소하고 싶어서 시험장에 왔을 것이다. 특히 연세 지긋한 분들은 이래저래 미뤄뒀던 배움에 대한 간절함을 중학교 졸업장으로 보상받고 싶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온라인수업이 길어지자 학생들은 그렇게도 가기 싫던 학교가 가고 싶단다. 교육부에서 실시한 등교 확대 인식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학부모의 91.9%, 학생 93.7%가 등교수업을 희망했다. 초중고 전체를 합해도 학부모의 90% 이상, 학생 70% 이상이 학교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온라인 수업을 하더라도 졸업에는 지장이 없는데 등교를 희망하는 것을 보니 학교가 졸업장 외에도 ‘많은 무언가’를 제공하는 곳임엔 틀림없음을 코로나가 알려 주었다. 


배움이라는 것이 억지로 강요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배우고 싶은 욕구와 배움의 즐거움이 있어야 잘 배워진다. 오늘 이 시험장에 온 어르신들처럼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많은 무언가’ 중 배움에 대한 욕구가 컸으면 좋겠다. 공부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학습하는 즐거움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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