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인권만사는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최예린(한겨레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내 가치관의 좌표는 어디쯤인가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09-28 18:01  |  122 읽음

      글_임병안


나의 가치관이나 철학이 어디쯤 있는지 평면으로 펼쳐진 도면 위에 좌표를 찍어볼 수 있을까.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으나 개선하기 위해 직접 행동하기를 꺼리는 것은 경도 127도 20분에 있는 것이고, 조언을 들을 때면 나를 업신여기는 것인지 반추하는 오만함은 위도 36도 19분께에 위치한 것이다. 경도 127도20분과 위도 36도19분은 대전 관저동 내가 앉아 있는 머리에 정수리를 찍는 위성 좌표다. 

얼마 전 수습의 신분에서 벗어난 후배기자는 내 좌표가 어디쯤인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고 있다. 아직은 배우는 단계에 있는 그 후배는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기사를 작성할 때까지 나에게 이렇게저렇게 묻곤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나의 가치관과 철학 좌표를 새롭게 인지하게 됐다. 가령 이런 것이다.


그 후배는 평소에도 고기를 먹지 않는데 어느 날 수산시장에 가서 수조에 갖힌 물고기를 취재하겠다는 아이템을 내놨다. "엥, 뭐라구. 수산시장 수조 속 물고기가 어떻게 취재 대상이 된다는 말이냐"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요동쳤다. 후배의 주장인즉슨 좁은 수족관에 너무 많은 물고기들이 갇혀 있는데 어류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척추동물에 해당해 학대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때 나는 그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 마음에 큰 벽이 하나 만들어지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언해준다는 게 이런 것이었다. "그러면 차라리 낚시문제에 접근해보는 것은 어때. TV에서 낚시를 예능으로 만들어 재미를 위해 물고기를 마구 잡고 있던데 이런 게 더 동물학대를 조장하는 것처럼 여겨지던데 말야"라고 말이다. 사실 이런 조언은 본질을 흐리는 것일 수 있다. 낚시 문제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후배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수산시장 수족관에서 손을 떼도록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후배 기자는 '[유난한 식탁: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물살이들 만나러 수산시장을 가다'라는 기사를 송고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인터넷상에서 여성혐오 콘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유튜버들과 그러한 콘텐츠의 소비자들을 규탄하는 시위가 대전에서 있어 취재를 다녀온 후에도 나는 일반적으로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마주했다. 후배 기자는 은행동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을 취재한 후 "악성 남초 온라인커뮤니티가 왜곡된 정보를 통해 반페미니즘 정서를 만들고 있고, 반 페미니즘 정서의 가장 큰 문제는 여성혐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여줬다. 백래시(backlash)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낯선 나에게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문화라는 주제는 처음 고민해보는 주제였다. 이날 후배 기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남성을 예비적 범죄자로 보는 시선은 아닐까. 내가 왜 이런 시선 앞에 놓여야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음을 느꼈다. 후배는 여성혐오를 주제로 영상콘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내는 일부 남초 유튜버에 대한 문제와 그러한 비뚤어진 콘텐츠를 소비해 더욱 부채질하는 문화소비자를 고발하는 내용의 기사를 송고했다.


이러한 경험에서 내가 나를 바라보던 것과 다르게 내 가치관과 철학은 상당히 다른 곳에 있음을 알게 됐다. 거울 속에서 보던 내 모습과 카메라에 담긴 모습이 다른 것처럼 무엇이 진짜일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 후배 덕분에 모르던 나를 발견하고 가치관과 철학을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경도 127도20분 위도 36도19분에 위치한 가치관과 철학을 내 의지대로 변경할 수 있는지도 흥미 있는 도전거리가 됐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