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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최예린(한겨레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 안선영(경기도교육청 장학사)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올림픽과 겨털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08-24 19:32  |  94 읽음

글_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도쿄 올림픽 2020이 끝났다. 올림픽은 전 세계 대륙 각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선수가 참가해 기량을 뽐내는 자리다. 역사 속 올림픽에서 전 세계 대륙 각국에서 모인 수천 명의 선수는 당연히 ‘남성 선수’를 의미했다. 초기 근대올림픽(1896년)에서는 여성 참가자는 한 명도 없었고, 1897년 ‘애국자의 날’에 처음 시작된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여성 참가를 공식적으로 허용한 것은 1972년이 돼서다.​1) 그래서 스포츠 역사는 젠더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젠더 투쟁의 역사’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도쿄올림픽은 사상 처음으로 트랜스젠더 선수가 출전한 역사적인 올림픽이었다(로럴 허버드 뉴질랜드 역도 대표 선발). 다행히(?) 그(녀)는 노메달이었지만, 만일 메달을 땄더라면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을 것이다. 


  그래서 올림픽을 볼 때마다 여러 복잡한 감정들에 휩싸이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털’이다. 정확하게는 ‘겨털(겨드랑이 털)’. 그렇다. 모든 여자 선수들은 겨털이 없다. 


  남성에게는 힘의 상징인 털을 여성은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사회적 규범.


  이미 털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 사회학자가 있었다. ‘머리카락의 사회학’(Shame and Glory : A Sociology of Hair)​2) 이라는 부제가 붙은 캐나다 컨커디어 대학 앤서니 시놋 교수(사회학)의 논문이다. 논문 요지는 간단하다. 


‘머리카락은 단지 머리카락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함축한 하나의 상징물’이라는 것. 

 

  남성스러움을 상징하는 곳의 털이 여성에게는 수치스러운 털이 된다. 겨드랑이 털과 콧수염이 그 예다. 털의 길이 또한 성(性)에 따라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남성에게 짧은 머리는 남성성을, 여성에게 긴 머리는 여성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성의 숏 컷은 여성성에 대한 부정이자, 남성성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다. 


  논문은 ‘머리카락의 상징성’은 성뿐만 아니라 정치 성향을 놓고도 갈린다고 설명한다. 정치 성향이 진보적인 남성은 장발일 가능성이 크고, 진보적인 여성은 단발일 가능성이 크다. 


  노동운동이나 정치적 메시지로서의 삭발식은 사회 통념에 맞서 자신의 소신을 지킬 때 그리고 더는 버틸 수 없을 때 최후의 선택으로 머리를 깎음으로써 결기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이 해당되는 것도 어디까지나 남성에 한해서다. 여성의 삭발은 수치와 혐오, 조롱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남성과 여성의 다른 점에 대해 쓰라고 했더니 한 남학생이 ‘겨털’이라고 했단다. 남자들은 겨털이 있지만 자기 주변의 여성들 (엄마, 누나)은 겨털이 없고, 지금까지 겨털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없어서 여자는 남자와 다르게 겨털이 없다고... 선생님은 여자도 겨털이 있다고 대답했는데, 그럼 보여 달라는 학생의 말에 보여줄 수는 없었다는 선생님의 답변은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 


  내친 김에 하나 더. 아이가 있는데 머리 모양을 길게 한 적도, 짧게 한 적도 있었다. 성별이 다른 아이에게 대하는 사회적 규범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일종의 실험이었는데, 짧은 머리를 할 때(남자아이로 생각함) 와 긴 머리를 할 때(여자아이로 생각함) 성별에 따른 기대역할이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행동에 남아라고 여겨질 땐 “남자아이라 활발하네요...” 라는 반응이, 여아라고 여겨질 땐 “여자아이인데, 참 활발하네요”가 된다. 전자는 수용을 후자는 교정을 요구한다. 


  그래서 능력이 뛰어난 여성에게 가해지는 치졸한 공격, 안산 숏컷 논란은 이토록 많은,  사회적으로 함축된 권력이 있는 것이다. 털의 권력, 그것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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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97년 ‘애국자의 날’에 처음 시작된 보스턴 마라톤은 1960년대까지 여성의 참가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보스턴 마라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마라톤 대회가 그랬다. “여성의 몸으로 42.195㎞를 뛰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캐서린 스위처의 생각은 달랐다. 1967년 스위처는 성별을 숨기기 위해 ‘K.V.스위처’로 대회 출전 신청서를 낸 뒤 가슴에 261번을 달고 대회에 공식 참가했다. 그가 5㎞ 즈음 달렸을 때 스위처가 여성임을 눈치챈 한 대회 조직위 관계자는 거칠게 그를 대회장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다. 이 모습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보스턴 헤럴드〉에 실렸고 이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스위처는 꿋꿋하게 피투성이 발로 완주를 했다. (출처: 김양희 기자, 2021년 3월 8일자 한겨레 기사 “스포츠사는 젠더투쟁 교과서.. 하나둘 벽을 허물다) 

   (https://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985814.html#csidx49b3549739077189793634529dc026f)


2)Anthony Synnot(1987), Shame and Glory : A Sociology of Hair , The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Vol. 38, No.3, 출처 : https://www.jstor.org/stable/590695?seq=1#metadata_info_tab_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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