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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한다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0-02-06 09:30  |  34 읽음

임아연 당진시대 편집부장 




10여 년 전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폐지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된 이 숫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필요하니 부여하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주민등록번호에는 생년월일부터 성별, 출생지는 물론이고, 가족관계, 혈액형, 범죄기록 등 한 개인에 대한 100여 가지 정보가 주민등록번호 하나로 관리된다. 자칫 주민등록번호가 유출이라도 되면 휴대전화, 이메일, 은행계좌 등 개인정보가 탈탈 털리기 십상이다. 


몇 년 전부터 없어지긴 했지만, 인터넷 사이트 하나 가입하려고 해도 주민등록번호를 반드시 기입해야만 했다. 지금도 완전히 주민등록번호를 폐지하진 않았지만, 굳이 불필요한 곳까지 주민등록번호를 묻는 일이 줄어들고, 아이핀 등 새로운 대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올해 10월부터는 주민등록번호에 지역정보를 삭제하는 등 주민번호 체계가 바뀐다. 


국가가 국민들을 통제하고 관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개인번호의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사람들이 공감하고 국가 또한 문제를 인식하기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걸렸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서 내게 처음 주민등록번호의 문제점을 말한 그 사람이 그땐 이상해 보였지만, 그게 상식이 되는 시대는 오긴 오는구나 싶었다. 세상이 이렇게 아주 더디게 변하는구나. 


최근 트렌스젠더 군인과 숙명여대 입학생 문제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든다. 이들을 향한 각종 혐오, 또는 합리를 가장한 무관심에 가까운 댓글을 보면서 한국사회의 인권의식에 좌절하다가도 ‘그래, 이런 논의가 있게 된 게 어디야’라며 자위한다. 


한 성소수자인 방송인이 커밍아웃을 하고 방송가에서 퇴출되다시피 했던 일이 20년이 지났으니, 군인도 공무원도 개개인의 성적지향과 표현의 자유를 얻기까지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하고 있다. 지금의 통념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회에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키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폭력과 고통에서 누군가가 너무 크게 상처받지 않길 바랄 뿐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라야만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에 나오는 이 구절이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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