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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손주영(북디자이너),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2019년 4월 11일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04-17 10:38  |  120 읽음

2019년 4월 11일


 나에게 임신은...

 모유도 인터넷을 잘 뒤지면 파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임신·출산에 무지했던 나였다.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는 순간,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뜨는 순간 내가 처음 받았던 느낌은 당혹감이었다. 누가 얘기하듯 생명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떨리고 경이로운 느낌이라기보다는 머릿속으로 몇 주일까를 계산했고, 다니던 회사에는 언제 알릴지, 그리고 일과 활동은 어떻게 정리할지부터 떠올랐다. 가까운 산부인과로 가 임신을 확인한 후 남편에게 알렸다. 눈시울이 붉어진 남편과 달리 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모든 게 엉킨 느낌이었다. 계획을 모두 수정해야 했고, 주변을 정리해야 했다. 임신기간 동안은 직장 내 누구도 내게 눈치를 주거나 싫은 내색을 비추진 않았지만 동료에게 미안했고, 나는 내가 맡은 일에 행여 차질이라도 생길까 전전긍긍했다.​1)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 

  그렇게 시작된 임신생활.. 나는 35세 이상이라는 이유로 고위험 산모로 분류, 기본 검사 외에도 거의 모든 검사의 대상자가 되어 본격적인 관리에 들어갔다. 임신 후에 받아야 하는 검사는 정밀검사나 선택검사를 제외하고 크게 6가지다. 산전검사, 1·2차 기형아검사, 정밀초음파, 임신성 당뇨검사, 태동검사가 그것이다. 그 중 1·2차 기형아검사라는 첫 번째 난관에 부닥쳤다. ‘왜 기형아 검사라고 하지? 산모들이 겁먹기 딱 좋은 단어 아닌가?’,‘만일 기형아라고 하면 돈은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 ‘만일 기형아라면 나는 낳지 않을 것인가?’ 등 장삿속에 휘둘리면 안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엄습해오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지 못하는 예비 부모들의 불안감을 담보로 장사하는 것 같은 병원에 속았다는 기분이 들어 의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만일 태아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조치를 병원에서 취해줄 수 있는 건가요?” “어떤 조치도 취해드릴 수 없습니다, ” “그럼 이 검사는 왜 하는 건가요?” “미리 알고 준비하시라는 차원입니다. ”사실 기형아검사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안해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왜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하지 않을까.   ‘장애가 있는 아이를 미리 알리는 이유에 대해 조기에 병을 발견해 생존율을 높이는 것이다’ 라는 병원측의 설명과는 달리 예비부모들에게 기형아검사는 장애아를 걸러내는 수단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물론 태아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누군가는 낙태​2)를 결심하기도, 누군가는 낳겠다고 결심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태아가 장애가 있음을 안 후 아이를 낳겠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낳겠다고 결심한 순간 낙태를 결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용기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질문을 달리해야 한다. 만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도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나라라면, 아니 적어도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고민을 하는 나라라면, 기형아검사라는 이름도 기형적인 검사를 앞두고 불안하면 안 된다며 검사를 받을까? 문제는 기형이 아니라 기형을 만들어 낸 사회다. 그런 환경 속에 사는 나는 정상일까? 



생명의 존엄성을 묻는 그대에게 


  4월 11일,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아마도 대한민국 여성운동사의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로 여성의 삶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낙태가 합법화되었다고 하여 차디찬 수술대에 올라 자신의 몸에 칼을 대는 일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오를 여성은 없다. 더욱이 낙태 불법화로 가장 피해는 받는 계층은 역시 가난한 여성들이다. 그런데 심상치 않다. 판결 이후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임신주수’는 언제로 할 것인지, ‘사회경제적 사유’의 기준은 어떻게 정할지가 큰 쟁점이 된 것 같다. 언제까지 여성이 자신의 가난이나 성폭행을 ‘증명’​3)하며 국가로부터 ‘득’을 구해야 하는가? 

   생명의 존엄성은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낙태를 ‘처벌’ 또는 ‘허락’해야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태어남에 있어 차별받지 않을 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지 않을 때,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고로 매년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때, 셀 수 없이 많은 피해자가 있음에도 뻔뻔한 위증으로 일관하는 대기업이 법망을 빠져나가지 않을 때, ‘국가직이 아니라서 불을 못 끄냐’ 같은 소리가 고막을 때리지 않을 때 지켜지는 것이다. 벌써 날이 밝았다. 오늘은 4월 1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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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임신, 출산, 육아휴직 차별 실태조사(2018)」 에 따르면 여전히 임신, 출산, 육아휴직으로 인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태조사 분석결과 여성 응답자 중 67.5%가 출산휴가를 사용하면 배치 및 승진에 있어서 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회사 내 남성 근로자비율이 높을수록 차별 인식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낙태’라는 말은 떨어질 ‘낙(落)’에 아이밸 ‘태(胎)’ 로 ‘태아가 달이 차지 않은 상태에서 죽어서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낙태‘라는 단어는 산모보다 태아 중심적으로 사용된 단어로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부정적인 행위란 뜻이 내포돼 있다는 이유로 ’자발적 임신중단 (임신중단)‘ 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지만 이해를 위해 ’낙태‘라는 용어를 그대로 표기했다. 

3) 현재 모자보건법상 성폭행이나 기형으로 판단되었을 경우, 임신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친다는 판단이 있다면 24주에 한해서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는 합법이다(모자보건법 14,15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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