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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양해림(충남대 교수), 장원순(공주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오징어게임과 자본주의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11-10 13:18  |  99 읽음

강수돌(고려대 명예교수, 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1. 넥플릭스 영화 <오징어게임>은 참가자 숫자와 일치하는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생사를 가르는 서바이벌 게임을 다룬다. 참가자들은 최후의 승자가 되어 일확천금을 얻고자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극한 게임에 도전한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어렸을 적에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 “너, 죽었다.”라고 했던 말들이 진지하게 듣는다면 진짜 목숨을 앗아간다는 말인데, 바로 그것이 <오징어게임>에서는 실제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의 실제 현실, 살기 아니면 죽기, 라는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 영화에서 게임 참가자 455명은 죽는 반면, 마지막 1인이 살아남아 456억 원이라는 거액을 독차지한다. 이는 지구촌 인구 70억 중 약 70명 정도의 극소수 슈퍼부자들이 하위 35억 인구가 가진 총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상징하기도 한다. 


2. 얼핏 보면, <오징어게임>은 로또 복권 게임과 비슷하다. 그러나 전체 내용을 보면, <오징어게임>은 복권 놀이가 아니라 자본주의 비판에 가깝다. 제한된 공간에 체계적으로 지적하긴 어렵고, 내게 직감적으로 잡힌 점들만 몇 가지 짚어 본다.


3. 그 비판적 내용의 첫 번째는, 가난한 사람들, 빚에 쪼들리는 사람들이 <오징어게임>과 같은 생사를 건 게임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영화 속의 <오징어게임>은 돈이 너무 많아 삶이 심심해진 자들이 돈을 매개로 보통사람들 목숨을 갖고 노는 것이다. 요컨대, 한편에서는 가진 것이 돈밖에 없어 삶이 무료한 사람들, 다른 편에서는 돈 몇 푼 벌려고 아등바등 대다가 빚에 쪼들려 목숨까지 걸고 생사 게임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 이 둘로 양극화하는 세상, 이게 자본주의다.


4. 두 번째 비판적 내용은, 돈벌이를 위한 장기(내장) 적출이다. <오징어게임>에서는 크게 두 유형이 나오는데, 하나는 빚을 갚지 못하는 자들이 조폭 같은 이들에 의해 장기 적출을 당함으로써, 즉 목숨과 장기를 바침으로써 빚을 갚는 식으로 나온다. 그 둘은, 다양한 게임을 하는 가운데, “죽은” 사람 중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기 적출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 어느 경우건 장기 적출을 통한 돈벌이란, 자본주의 중에서도 ‘갈 데까지 간’ 경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통상적인 자본주의란 돈(자본)을 투자해 공장을 세워 노동자를 고용한 뒤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팔아 더 많은 돈(이윤)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산업 자본주의는 갈수록 원료 고갈이나 시장 포화, 나아가 노동 저항 등으로 위기에 빠진다. 게다가 자본이 무한한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가운데,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갈수록 기술 혁신을 많이 하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잉여가치의 양은 줄어든다. 그 이유는, 유럽의 안젤름 야페 교수가 <파국이 온다>(2021, 천년의상상)에서 역설하듯, 시장 경쟁과 기술 혁신으로 말미암아 효율성과 생산성이 올라갈수록 단위 상품 당 들어가는 인간 노동의 양, 즉 가치 및 잉여가치의 양이 그 효율에 반비례하여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에서 장기 적출로 상징되는, 생체 자본주의는 산업 자본주의의 이런 한계와 모순을 돌파하기 위한 다양한 대응 전략들(식민주의, 시장 확장, 생산 규모 확대, 세계화, 체제 변환, 신상품 개발, 우주 개척, 디지털 경제, 공정 개선, 인사조직 혁신 프로젝트 등) 중 하나일 뿐이다. 이 현상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노동력이라는 제한된 측면이 아니라) 사람 몸 전체를 상품화하여 돈벌이(이윤 추구)를 하는 것은 장기 적출만이 아니라 코로나19 백신을 포함, 온갖 생체 정보를 활용하는 오늘날의 의료 제도 전반에도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5. 세 번째 비판적 내용은, 제6화에서 나오는 것과 관련된다. 그것은 두 명씩 짝을 지우라는 게임 명령에서 암시되듯, 일단 한 패가 된 짝들(“깐부”)끼리 협동을 잘 해서 다른 짝들을 상대로 대적해 이겨야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오히려 각 팀마다 깐부끼리 서로 싸워 이긴 자는 살고 진 자는 죽는 게임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인권 내지 인간성에 대한 궁극의 배신인가! 이것은 마치 부부나 부자, 형제나 자매끼리 사활을 걸고 싸우라는 것과 같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설명하진 않지만 내 나름 이 원리를 현실 자본주의에 적용하면 이렇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한 뒤 회사에 취업하면 일단 각 회사마다 생존력 내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회사마다 노와 사는 열심히 협력해야 한다. 그래야 그 회사 전체적인 경쟁력이 높아 생존력도 높아진다. 회사마다 노와 사는 일종의 “깐부”가 된다. 그러나 바로 그 깐부를 자세히 보면, 회사마다 깐부끼리 협력이 잘 된다는 것은 노동자는 노동자의 역할을, 경영자는 경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해, 노동자는 결코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노동력’으로서 경영자의 명령과 지시에 복종을 잘 한다는 뜻이며, 이는 달리 말해 저항을 하거나 나태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즉, 동일한 깐부 안에서도 노와 사는 각기 생사가 엇갈리는 게임을 한다. 노동자는 인격체를 죽이고 노동력 역할을 잘 수행해야 살고, 경영자나 자본가 역시 본연의 인간성보다는 수익성 논리에 충실해야지만 자본의 지속가능성을 드높이게 된다. 노사관계 관점에서 이를 다시 요약하면, 각 회사마다 강조되는 노사 협력이란 각 회사마다 자본이 노동을 확실히 장악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경쟁이란 것이 결국은 상품 시장에서의 경쟁이고 그 상품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자본가는 자본가대로 그 고유의 인간성이나 인격체를 망각하고 억압해야 하는 본질을 띤다. 따라서 아무리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줄인다 해도, 자본주의 상품 경쟁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인권의 실현 내지 인간 해방은 요원하다. 불편하지만 진실이다. 흔히 우리는 돈이나 상품으로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줄이기만 하면 인권이 실현될 것처럼 생각하나, 이건 착각이다.


6. 이런 면을 우리가 깊이 성찰한다면, <오징어게임>에 나오듯 주인공 성기훈이 최후의 승자가 되어 456억 원을 손에 쥔다 하더라도, 그리하여 그 돈으로 그동안 죽어간 친구나 이웃들의 한(트라우마)을 다 풀어준다 하더라도 과연 인간성이 실현되고 인간 해방이 올 것인가, 하는 점에서 결코 긍정적 대답을 하긴 어렵다.


7. 그렇다면 우리는 <오징어게임>을 자본주의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어떤 결론에 이르는가? 우선, 그것은 자본주의 안에서는 빚을 지는 사람들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한편, 다른 편에서는 그들이 ‘오징어게임’ 같은, 생사를 건 게임(넓은 의미로, 복권, 로또, 주식, 투기, 놀음, 카지노, 마약, 검은돈 등)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노동시장에 가서 일을 해도 문제고(저임금, 비정규, 차별, 스트레스, 과로, 성과 경쟁, 일중독, 산업재해 등) 일을 하지 못해도(실업, 해고, 비정규, 알바, 노숙자, 소매치기, 도둑질, 룸펜 등) 문제다. 겉보기엔 일을 못하는 경우가 더 큰 문제로 보이지만, 어느 쪽이 진짜 문제인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렇게 자본주의 ‘노동시장’을 기준으로 인간 삶을 보기 시작하면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다. 따라서 노동시장을 초월한 다른 기준으로 삶을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행복한 삶 내지 공동체적인 삶을 기준으로 세상을 달리 볼 필요가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것이 모든 사람들이 매일 고민하는 화두가 돼야 한다.


8. 다음으로 우리는 자본주의를 역사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인간의 보편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특수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노예제나 봉건제처럼 자본제 사회 역시 긴 인류사에서 하나의 과도적인, 일시적인, 지나가는, 생성하고 소멸하는 시스템으로 본다는 이야기다. 시스템조차 사람이 만든 게 아닌가? 또, 만물의 보편 법칙 중 하나가 ‘세상 만물은 변한다.’거나 ‘생로병사’ 내지 ‘흥망성쇠’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이 아니던가?


9.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멀리 15, 16세기에 생성되기 시작해 18세기에 산업혁명으로 제 발로 걷기 시작했으며(고전적 자유주의), 19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 급성장하다가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세계 경제를 다시 포맷팅한 뒤 2차 대전 후 1970년대까지 약 30년간 최고조기(포드주의 내지 케인스주의, 또는 복지국가 자본주의 시기)를 누리다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단계에 이르러 쇠퇴기로 접어들었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더불어 사실상 파산 선고가 떨어진 상태이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솔직히 말해, 마치 종합병원의 중환자가 산소 호흡기로 억지 연명 치료를 받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IMF 사태나 미국과 유럽의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대규모 구제금융 사태가 바로 그 억지 연명 치료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은 물론 세계 자본주의 각국이 대규모 부채더미에 놓이게 된 것(한국의 경우, 총부채는 약 6,000조 원을 넘어, 갓난아기까지 국민 1인당 평균 부채가 1억 원이 넘는다.)은 역으로, 부채라고 하는 산소 호흡기 없이는 자본주의 자체가 이미 뇌사 상태에 빠졌음을 방증한다. 요컨대, 자본주의는 시스템 전반의 차원에서 빚으로 흥하고 빚으로 망한다.


10. 이렇게 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본다면, 마치 우리가 부모님의 인생에 대해 안타깝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실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하듯, 자본주의 역시 우리와 결별해야 할 때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자본주의는 봉건제의 신분제도를 타파하여 비교적 자유로운 세상을 열었고(‘신분의 자유화’), 또 초등학생들조차 스마트폰과 같은 고도의 기계장치를 대중 소비할 수 있을 정도로 ‘소비의 민주화’라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 온난화, 미세먼지, 자원 고갈, 핵 위험, 쓰레기 대란, 코로나 사태, 기후 위기 등과 같은 문제들에서도 잘 나타나듯, 자본주의의 한계와 모순은 극에 달했다. 특히, 앞의 안젤름 야페가 <파국이 온다>라는 책에서 말하듯, 가장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는 무한 이윤(잉여가치)을 추구하는 한편으로,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술 혁신 과정에서 상품 단위당 가치 내지 잉여가치의 양을 축소시키는 자기모순을 갖고 있다. 그런 모순을 극복한답시고 나온 대책들이 생산량 확대와 시장 확장, 신상품 개발 등으로 나왔지만 결국에는 위와 같은 삶의 문제(지구 온난화부터 기후 위기에 이르기까지), 즉 집단 자살의 위기만 낳고 말았다. 이제 인류는 집단 생존이냐 공멸이냐, 라는 기로에 서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 ‘탈자본’의 문제의식과 ‘탈자본’의 사회구조를 열어나가야 한다. <오징어게임>이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최고의 가르침이다.


11.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2021년 넷플릭스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오징어게임>조차, 자본주의가 초래한 코로나19 상황, 즉 비대면 상황에서 최고의 새로운 돈벌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자본주의와 생체 자본주의의 절묘한 결합을 보여준 사례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이런 점 때문에라도 우리는 ‘탈자본’ 운동(MBC, Movement Beyond Capital)을 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인권과 민주주의, 인간 해방을 이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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