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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양해림(충남대 교수), 장원순(공주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흑서야, 백서야? 대전시와 대전 동구청에 던지는 질문하나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09-08 17:56  |  70 읽음
글_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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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페이퍼whitepaper). 말 그대로 하얀 책, 백서(白書)다. 백서는 '정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발간하는 보고서'를 의미한다. 영국이 정부 발간 보고서의 표지를 흰색으로 했던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국정을 다룬 국정 백서, 국방 문제를 다른 국방백서, 외교 현안을 다룬 외교백서 등이 그것이다. 근래는 정부보고서만이 아닌 기관, 단체, 각종 모임을 망라해 특정 사안을 조사한 결과를 정리해 묶은 종합 조사보고서를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커졌다.


블랙 페이퍼(blackpaper), 흑서도 있다. 공식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기밀을 지켜야 하는 문서를 '흑서'라고 한다. 조국 백서추진위원회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한 '조국 백서'를 펴냈다. 그러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기밀문서는 아니지만) '조국 흑서'를 발행한 게 그 예다.


1950년 6.25 전쟁 전후 한국 정부는 수많은 민간인을 불법으로 집단 학살했다. '북한군에 협조할 우려가 있어서', '북한군에 부역한 혐의가 있어서', '과거 좌익활동 경력이 있어서', '이승만 정부를 비판한 전력이 있어서'…. 등 학살의 이유도  매우 자의적이었다. 부모를 대신해 그의 자식을 죽이거나. 형제자매를 대신해 그의 부모나 일가족을 몰살한 예도 많았다. 당시 이렇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람이 약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억울한 학살 터가 즐비하다.


하지만 이후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누구도 이 사건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말 그대로 불랙페이퍼(blackpaper), 기밀이었고 관련 기록은 모두 기밀문서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건이 일어난 지 50여 년 만인 지난 2005년 정부가 우리 현대사의 반민주적·반인권적 사건 등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목적으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원회)를 발족, 진실조사에 나섰다. 5년 동안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힌 정부에 의한 민간인집단희생사건만 150건에 이른다.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는 6.25 전쟁 기간 약 7,000명 가까운 사람이 군경에 의해 집단학살됐다. 대전과 충남북 지역 민간인은 물론 대전형무소에 갇혀 있던 제주 4.3항쟁, 여수순천사건 등 전국 각지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망라됐다.


하지만 정부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60년 동안 당연히 죽어야 할 '빨갱이'들이 처형된 것이라며 억울하게 살해된 사람들을 합법적인 처형인 양 왜곡했다. 이들에 대해 언급한 것 자체를 금기시했다.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계기로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국의 각 지방정부는 민간인집단희생사건 희생사건지원조례를 제정해 '백서 발간'을 지원했다. 학살사건의 진상을 조사 정리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늦게나마 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충남 태안에서는 태안 백서가, 공주에서는 공주백서, 울산에서는 울산백서, 고양에서는 고양금학살사건 백서....등이 발간됐다. 백서를 통해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왜곡되고 은폐된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60여 년 만에 '흑서'(비밀보고서)가 진실이 담긴 '백서'가 돼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전 골령골 사건에 대한 백서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대전시와 대전 동구청은 지난 2015년과 2016년 각각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지금까지 조례제정에 따른 대전시의 지원은 매년 열리는 희생자위령제(추모제) 행사비 지원이 전부다. 대전 동구청이 별도 예산을 통한 지원은 현재까지 '0'원이다.


그나마 행정안전부가 대전 골령골에 전국 민간인집단희생자를 추모하고 사건의 진상을 알릴 '평화공원' 건립과 '유해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대전산내희생사건유족회는 골령골평화공원 건립에 발맞춰 골령골 희생 사건 백서발간을 위한 예산지원을 요청했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올해도 거절됐다. 또 거절될 걸 알면서도 '내년이라도….' 하며 백서발간 비용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발간비용이 없어서가 아니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어그러진 역사를, 적어도 대전시나 동구청이라는 '공공기관'의 손으로  바로잡아주길 바라서다.


내년이면 골령골학살사건이 일어난 지 72년째가 된다.  내년에는 골령골의 어두운 '흑서'가 밝은 빛처럼 '백서'로 나와 세상을 비출 수 있을까? 대전시에, 대전 동구청에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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