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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양해림(충남대 교수), 장원순(공주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이재용을 가석방하면, 국가경제가 나아진다고? 주술사들의 주문과 같은 법률가들의 말장난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08-11 21:17  |  87 읽음

                                                              글_좌세준(변호사)


“부족 시대에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법률가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자신들이 갈고닦은 특수한 지식의 권위를 지켜 내기 위해,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영특한 무리들이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그 직업적 속임수가 문외한들에게 발각되지 않게 숨기고, 당대의 문명사회를 자기들의 방식대로 운영하던, 사이비 지성의 독재 체제가 존재했다.” 


 예일대학교 로스쿨 교수 프레드 로델(Fred Rodell)이 1939년에 낸 책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는 위와 같은 말로 시작된다. 위 책의 원제 <Woe Unto You, Lawyers!>는 성경 구절(루카복음 11,52)을 인용한 것이다. 한글 번역 성경에서는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라고 완곡하게 표현되고 있지만, 예수가 당대의 법률가인 ‘율법교사’들에게 던진 말은 ‘저주’에 가까운 통렬한 꾸짖음이다. 


 그런데 로델은 왜 오늘날의 법률가들을 부족시대 주술사와 같은 반열에 놓고 비판하는 것일까. 


 ‘주술(呪術)’은 “불행이나 재해를 막으려고 주문을 외거나 술법을 부리는 일”을 말한다. ‘탈주술(脫呪術)’이 근대를 특징짓는 현상임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술사’들의 주문(呪文)에 현혹되는 일은 없다.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궁박한 상황 때문에 마지못해 마지막 수단으로 주술사에 의지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주술’이 실제로 실현될 것이라 믿는 사람은 흔치 않다. 천연두의 원인을 몰랐던 시대에는 굿으로 마마를 쫓아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요즘은 누구나 그런 믿음이 ‘미신(迷信)’임을 안다. 로델은 예수가 살았을 당시의 율법학자들이나 현대의 법률가들이 ‘특수한 지식의 권위’와 ‘그럴듯한 말장난’으로 대중들을 기만하는 ‘직업적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럴듯한 ‘속임수’가 ‘발각되지 않게 숨기는’ 말과 수법을 사용하는 것은 법률가들이나 주술가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지난 9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에 대한 고려차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대통령도 법률가, 법무부 장관도 법률가, 가석방심사위원회 위원의 과반수가 법률가인 상황에서 나온 결정인데, 이들 ‘법률가’들은 말 그대로 이재용 부회장을 가석방하면 ‘국가적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응할 묘책이 나오리라고 믿는 것일까.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은 횡령과 뇌물공여, 국회에서의 위증 등 다수범죄 처리기준에 대한 권고형의 범위인 ‘징역 4년에서 10년 2월’보다 훨씬 낮은 징역 2년 6월의 형을 선고함으로써 피고인 이재용을 선처했다. 이번 가석방 결정은 이와 같이 ‘선처’한 이재용 부회장을 가석방하는 방법으로 다시 ‘선처’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선처의 이유를 “양형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얼버무렸지만, 이번 가석방 결정에서는 ‘국가 경제’, ‘글로벌 경제환경’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나 또한 법률가이지만, 법률가들이여 솔직히 답해보라. 기업가들이 제1의 목표로 ‘이윤 추구’가 아니라 ‘공익’이나 ‘국가 경제’를 먼저 꼽은 전례가 있는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인권 경영’이 주주들의 이익, ‘오너’들에 대한 배당보다 우선된 적이 있는가? 기업은 태생적으로 ‘이윤’과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한다.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한 것은 판결문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돕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 달라”는 목적이 아니었던가? 


 “이재용 부회장을 가석방하면 국가 경제가 나아질 것”이고 반도체 패권 전쟁이 벌어지는 “글로벌 경제환경”에서 대한민국이 승리할 것이라는 말은 주술사들이 외는 ‘주문’과 다르지 않다. 부족시대에나 통했을 주술을 믿으라는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으로 대중들을 영원히 속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다시는 이번과 같은 주술사의 술법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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