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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人權은

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양해림(충남대 교수), 장원순(공주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아홉 번째 이돈명인권상 수상자 ‘성소수자 부모모임’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0-01-22 19:28  |  84 읽음

                                   좌세준(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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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10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이돈명인권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이돈명인권상은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매년 우리 사회의 인권 문제 개선과 인권 운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나 단체에게 주는 상입니다. 올해는 아홉 번째 수상자로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상을 받았습니다. 저도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어 시상식에 참석했습니다. 어느 해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상을 받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축하해드렸습니다. 무지개떡 한 시루를 마련해서 시상식에 오신 분들이 함께 나누어 드시기도 했지요. 

 이돈명인권상은 2011년에 돌아가신 이돈명 변호사님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상입니다. 이돈명 변호사님은 암울했던 1970년대 유신 독재 시절에 인권변호사들의 ‘맏형’ 역할을 하셨던 분입니다.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오원춘 사건, 와이에이치(YH) 사건,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등을 변론하고, 1986년에는 그 자신이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지요. 아쉽게도 저는 이돈명 변호사님을 직접 뵌 적은 없는데요, 생전에 인터뷰하신 영상을 보면 이돈명 변호사님은 항상 소년처럼 웃는 모습입니다. 웃음 하나로 상대방의 긴장을 무너뜨려버리는, 놀라운 능력. 영화 <1987>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실존인물 김정남 선생이 쓴 책 《이 사람을 보라》에는 이돈명 변호사의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한 번 옮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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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지식인 134인 선언과 관련해서 이 선생(이돈명 변호사)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때 수사관이 꽤 딱딱거리며 조사를 했는데, 이 선생이 수사관을 자세히 보니 수사관의 머리가 염색한 머리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사관한테 은근히 묻기를 “당신 머리 염색한 거지?” 했더니 수사관이 그만 웃어버리고 말더란다. 이로부터 조사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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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변호사라는 신분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만,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했던 중정 수사관을 웃게 만드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인권 운동을 하는 현장 활동가들이 배우고 갖추어야할 ‘부드러운 무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돈명 변호사님의 이런 넉넉한 마음과 웃음을 보고 싶으시다면 유튜브 영상을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올해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드린 상패에는 시상이유가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성소수자들의 활동을 지지할 뿐 아니라 나아가 우리 사회의 다른 약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활동해왔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소수자는 단지 다수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회의 불안과 무지에 기인한 온갖 혐오, 차별을 받게 됩니다. 

 혐오와 차별은 그 집단에만 향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소수자들을 향해 확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소수자의 인권을 지켜내는 것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공동체의 건강성을 지켜내는 소중한 일입니다. (중략)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은 단지 자신들의 자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온갖 혐오와 차별을 막는데 도움을 주었고 인권의 보편성에 우리 공동체가 귀 기울이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이 대한민국의 대표적 인권 변호사로서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헌신해 온 고 이돈명 변호사님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존경과 격려를 담아 9회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인권상을 드립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 소수자’는 여전히 차별과 혐오의 영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종교의 논리, 정파적 편견이 혐오를 확산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혐오의 피라미드(Piramid of Hate)’ 그림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소수자에 대한 단순한 농담이나 배타적 언어가 작동하는 단계가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이고, 개인적 욕설이나 괴롭힘의 2단계를 거쳐, 전 사회적 배제와 차별이 작동하는 3단계, 소수자에 대한 생명 위협, 폭력으로 나아가는 4단계를 거쳐 집단학살(Genocide)의 최고 정점에 이르는 혐오의 피라미드 말입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자신들의 자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혐오와 차별의 확산 현상을 경계하고, 모든 차별이 사라진 세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홍정선 대표는 이돈명인권상을 수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끝자락에 있는 성소수자가 살기 안전한 사회는 모든 소수자와 약자가 살기 안전한 사회라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 수상한 이 상의 의미는 아주 크다고 봅니다. (중략) 2014년 2월 성소수자인 가족을 지지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부모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매월 정기모임과 출판물, 상담, 강연, 전국퀴어문화축제 참가, 인권단체와의 연대, 성소수자인권포럼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략) 어느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 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하나하나가 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입니다. 누구도, 어떤 제도나 힘도, 그 삶의 신비로운 빛을 함부로 가리거나 꺼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우리 부모는 자녀가 성소수자인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랄뿐입니다.“ 


이돈명 변호사님은 1970년대 유신정권과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법정과 거리에서 싸운 분입니다. 이돈명 변호사님이 변론한 분들도 당대의 대표적 ‘소수자’였습니다. ‘빨갱이’라는 낙인을 받은 사람들, ‘공순이’라 불린 여성 노동자들, 정치적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들 모두가 한국 사회의 소수자였습니다. 이돈명 변호사님이 살아 계셨다면 단지 성적 지향이 다수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혐오와 차별을 받는 성 소수자들을 따뜻한 애정과 웃음으로 격려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한 제도개선과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깨기 위해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셨을 겁니다.이돈명인권상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인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한 겨자씨 한 알의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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