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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배재대 교수), 장수명(한국교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 양해림(충남대 교수), 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장원순(공주교대 교수)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가치전도의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11-26 09:52  |  34 읽음

강수돌(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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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_pixabay ⓒ


  장면1: 어느 페친이 동대구역에서 이런 서명운동을 하는 걸 보았다고 SNS로 알려 왔다. 서명운동의 제목은 ‘원자력을 살리기 위한 탈원전 반대’다. 그 주장 내용을 보니 그간 원자력 옹호 진영에서 늘 하던 이야기다. 즉, 원자력은 미세먼지 없는 청정에너지, 온실가스 없는 친환경 에너지, 가장 저렴한 서민의 에너지, 국가 경제를 지키는 준 국산 에너지,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한 기저 에너지, 40년 무사고의 안전한 에너지라는 것이다. 그 안내문을 자세히 보니, 탈원전 반대만이 아니라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이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습니다. 7000억 원을 들인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재개가 원자력산업을 살리는 길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운동의 주체가 한국수력원자력 소속 노동조합이란 점이었다.


  장면2: 현 정부의 ‘11.6 부동산대책’이 역설적으로 아파트 투기 열풍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고 말았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하기로 했으나 ‘예외’ 지역을 너무 많이 두었기 때문이다. 서울 내에서도 그 예외에 든 지역 및 수도권 전역, 그리고 대출규제가 해제된 부산과 고양에서 새로운 투기 바람이 불고 있다. 심지어 이미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서울 강남4구의 아파트 역시 분양가상한제에도 불구하고 그 시세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한편, 정부가 자사고, 특목고 등을 폐기한다는 방침을 밝힌 뒤 이른바 ‘학군’이 좋은 강남권, 강서구, 양천구에서는 매매가만이 아니라 전세값까지 들썩거린다.


  장면3: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던 11월 14일, 청소년·청년들이 학벌주의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며 대학 입시 거부 선언을 했다. 이미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가 유명하다. 이 단체의 주최로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2019 대학입시 거부 선언’이 진행됐다. 이 선언에는 고교 3학년 학생, 17~18세 청소년, 20대 청년 등 총 6명이 참여했는데, 막상 3명은 가족의 반대 등으로 선언식에는 빠졌다. 이들은 “정시든 수시든 입시경쟁 반대한다,” “학력·학벌 차별, 입시경쟁·고교서열 뿌셔 뿌셔,” “무한경쟁은 교육이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남 밀양에 사는 박경석(19)씨는 가족의 반대로 거부선언식에 가지 못했으나 영상물을 통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대학입시와 경쟁사회를 거부한다.”고 했다. “폭력적 송전탑 건설에 저항하는 주민들을 만났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싸우는 노동자들도 만났으며, 학교와 세상에서 억압당하고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 사는 청소년들도 만났다.”고 했다. 그 결과 “도대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불러오는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문제는 결국 경쟁체제였다.”고 밝혔다. 눈재(17) 씨는 “나의 가치는 점수화할 수 없다”며 “평가당하는 삶을 거부한다.”고 했다. 일례로 “시험이 끝난 날, 시험 결과를 확인할 때 우는 학생들이 많다.”며 “그건 그 학생들이 성숙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시험 결과가 자신의 가치가 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런데 같은 날 순천에서 수능 시험을 치른  19세 학생이 어느 아파트 22층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서글픈 뉴스가 나왔다.

 


  장면1은 노동의 세계를, 장면2는 주거의 세계를, 장면3은 교육의 세계를 신랄하게 드러낸다. 노동의 세계는 무슨 노동을 하는가와 무관하게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며, ‘노동자’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물론, 자본은 이것조차 용인하지 않고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써서 억압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동이 신성하고 노동자가 존엄하다고 해도, 인류 절멸의 힘을 가진 원자력을 옹호하는 노동조합에 동의할 수 있는가?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교훈을 잊었는가? 탈원전 때문에 미세먼지가 심각하다는 주장은 맞는가? 또 주거의 세계는 어떤가? 2005년 이후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섰다. 골고루 나누기만 하면 가구당 집 1채씩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라. 지금도 고층아파트 건설현장의 크레인은 요란스레 돌아간다. 죽으면 관 속에 넣지도 못할 집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재산증식 욕망이다. 자본의 이윤욕망과 닮아 있다. 그런 아파트 역시 건설 노동자들의 ‘신성한’ 노동으로 지어진다. 교육의 세계는 어떤가? 전국의 고교에서는 해마다 SKY대학 내지 In-서울 대학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입학시키는지 경쟁한다. 교사들의 ‘신성한’ 교육노동이 경쟁교육으로 나타난다. 부모들이 ‘신성한’ 노동으로 번 돈을 학교교육과 과외비, 학원비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그 투자의 수익률은 아이가 합격하는 대학의 순위로 정해진다. 기대에 어긋나면? 부모는 배신감을, 아이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장면3은 다행스럽게도 그런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는 선언을 보여주지만, 맨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19세 학생이 보여주듯, 시험 결과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주지 못할 때 살아갈 힘을 상실하기도 한다. 어쩌면, 톱클래스에 들지 못하는 90%의 사람들은 늘 그런 죄책감, 열등감, 열패감, 좌절감을 가슴 깊이 안고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좀비’같이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가? 모든 사람은 나름의 개성과 소질이 있다. 한 줄 세우기 경쟁이나 일중독, 돈 중독, 소비중독에 절어 사는 게 아니라, 연대하고 협동하며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며 오순도순 사는 게 인간다운 삶이다. 원자력수력노동조합의 노동자나 경영진도, 아파트 시세만 쳐다보는 부동산 업자나 건설자본, 건설노동자, 투기·투자자도 모두, 대입 거부 선언을 한 아이들로부터 참된 인생살이의 원칙과 철학을 배워야 한다. 현재 가치전도의 삶을 사는 모든 이들이 ‘투명가방끈’ 청년들로부터 가치회복의 삶을 배우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희망이 생길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점수화, 수량화, 화폐화가 불가능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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