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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배재대 교수), 장수명(한국교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 양해림(충남대 교수), 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장원순(공주교대 교수)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홍콩 시민 그들은 당신과 나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고 있다!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11-14 06:54  |  204 읽음

홍콩 시민 그들은 당신과 나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고 있다!

- 차우츠록과 이한열을 기억하며 - 


                                                     글_좌세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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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시위대가 6월12일 홍콩 정부청사 앞에서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 협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무릇 중화의 아들딸들은 무슨 옷을 입든지 간에 무슨 입장을 견지하든지 간에, 적어도 모두 중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홍콩인에게도 이런 종류의 민족 자부심이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홍콩을 두고 한 말이다. 덩샤오핑은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인 2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일찍이 대만 통일 방식으로 그가 제기했던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체제(一個國家, 兩種制度)’,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는 홍콩에서 먼저 실현됐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제안한 일국양제가 홍콩에서 온전히 자리를 잡으려면 홍콩인들에게도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본 것일 게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수도 있다. “홍콩인들이여 그대들도 중화민족이니, 다른 생각일랑 하지 말게나.” 


 지난 6월 9일 ‘범죄인 인도법안’에 반대하며 시작된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시위 도중 추락 사고로 중태에 빠졌던 홍콩과학기술대학 2학년생 차우츠록(周梓樂)이 사망했고, 그를 추모하는 집회에서 홍콩 경찰은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했다. 실탄 발사 장면은 SNS를 타고 생중계됐다. 시위에 참가한 홍콩시민들은 ‘범죄인 인도법’을 ‘중국송환조례(送中條例)’라 부른다. 6월 9일 시작된 집회의 대표적 슬로건 또한 ‘반송중(反送中)’이다. ‘범죄인 인도법’은 단순히 ‘범죄인’을 중국으로 인도하는 법이 아니라, 홍콩 내 반체제 인사, 인권 운동가를 중국으로 송환하여 중국 법정에 세우는 데 악용될 것이라는 것이 홍콩 시민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결정적 이유다. 최근 홍콩 시민들의 시위는 범죄인 인도법 반대를 넘어서서, 경찰의 무력진압 등 공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 캐리람 행정장관 퇴진을 포함한 홍콩의 ‘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중국 인민해방군 투입 가능성이 거론되고, ‘톈안먼 사건’의 비극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의 군 투입은 홍콩을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홍콩 시민과 홍콩 정부의 대화, 국제적 중재와 정치적 해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홍콩 시위는 군사독재와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가진 우리들에게 낯설지 않은 것이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는 대학생모임이 내건 현수막이 훼손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중국 국적 유학생들이 훼손한 것으로 확인된 것도 있고,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은 것도 있다. 만약 중국 유학생들이 ‘애국심’에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면 대단한 착각이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중국 유학생들의 애국심을 폄하할 뜻은 결코 없으나, 그들이 ‘글로벌 중국’을 꿈꾸는 새로운 세대라면 자유와 인권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universal) 염원이라는 ‘상식’(common sense)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러한 상식을 갖추지 못한 ‘애국’은 맹목적 국수주의와 다르지 않으며,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국가 권력의 발자국 밑에 던져 넣는 노예적 발상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얀호라이 홍콩민간인권전선 부의장은 “홍콩 시민들은 대학생 차우츠록의 죽음을 보며, 1987년 한국의 대학생 이한열의 죽음을 떠올렸다”고 한다. 얀호라이는 또 “2005년 한국 농민이 홍콩에 와서 WTO 반대 투쟁을 한 것도 홍콩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줬다”는 말도 했다. “한국 농민들은 3보 1배, 9보 1배를 하며 평화적인 방법으로 힘들게 호소하며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자유와 인권은 그런 것이다. 국적과 인종을 넘어, 피부색과 언어, 성과 종교를 구별하지 않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인류가족 모두의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다.” 이것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전문의 첫 문장으로 온 인류가 선포한 대원칙이다. 


 나는 지난 11월 8일 숨진 홍콩과기대생 차우츠록을 애도한다. 얀호라이의 말처럼 그의 죽음은 1987년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 사망한 이한열의 죽음을 떠올린다. 시인 존 던(John Danne)은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는 것. 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노래했다.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스트 프랑코 군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의용군으로 구성된 국제여단의 슬로건은 이러했다. “당신과 나의 자유를 위하여!”


 만약 이 세상 어딘가에 사는 사람들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면 그것은 곧 당신과 내가 누리는 자유가 줄어드는 것이다. 홍콩 시민, 그들은 그들의 자유뿐만 아니라 당신과 나의 자유를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 홍콩 시민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뜨거운 지지와 연대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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