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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배재대 교수), 장수명(한국교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 양해림(충남대 교수), 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장원순(공주교대 교수)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조국 논란을 넘어 사회구조 변화로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09-19 10:27  |  63 읽음
강수돌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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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경향신문, 김영민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한 논란이 8~9월의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특히 자녀 대입 특혜 의혹 제기와 관련된 논란은 이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경우로 불이 번져 버렸다. 여전히 그 어느 것도 사태의 진위나 진실은 깨끗하게 정리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또 그 모든 보수 검찰 권력이 총동원되어 먼지털이하듯 했어도, 그 결과는 하잘 것 없었고, 따라서 장관 임명도 '검찰개혁'과 '사법정의'라는 시대정신과 대통령 의지가 맞물려 마침내 원래 구도대로 이뤄졌다.  

이제 우리는 좀 더 차분히 그간의 논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여당이나 야당, 찬반 등의 의견을 떠나, 또 특정 개인이나 조직의 이해득실을 떠나, 그간 논란의 핵심을 짚어보고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찾는 것이 미래지향적이자 생산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양한 논의들이 이뤄졌지만 내가 보기엔 '격차사회'를 평등사회로 바꾸어야 한다는 게 핵심인 것 같다. 격차사회란 빈부격차가 교육격차로, 또 이것이 직업격차로 이어지면서 재산ㅡ교육ㅡ노동의 사다리가 악순환괴는 것이다.

첫째, 소득격차나 자산격차는 기회나 정보의 격차를 낳는다. 부모의 빈부 차이는 그 사회자본이나 문화자본을 매개로 기회와 정보 차이를 초래한다. 부모의 지위나 직업에 따라 인턴 기회도 달라지고 사는 동네 분위기도, 학군도 달라진다.

둘째, 정보격차나 기회격차는 학력격차나 학벌격차를 낳는다. 부모의 정보력과 인맥, 동네 분위기, 학교 분위기는 아이들의 학력에 차이를 낳고 이는 스카이로 상징되는 학벌격차를 초래한다. 갈수록 수도권의 있는 집 아이들이 스카이 집단에 진입하기 유리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셋째, 학력격차와 학벌격차는 취업격차와 승진격차를 초래한다. 재벌과 공기업, 공무원 등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은 이렇게 이미 교육 과정에서 정해진다. 나아가 이미 진입한 기득권층은 후배들을 끌어주고 밀어준다. 이런 식으로 내부자들이 형성되어 그들끼리의 리그가 형성된다.

넷째, 기존 부모의 소득 및 자산이 대물림되는 위에다 자녀 당사자의 취업 및 자산격차가 더해지면 다시 사회 전체적으로 소득 및 자산격차, 즉 빈부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물론 여기엔 정부 정책 내지 사회 정책 등 사회적 집단 선택의 변수가 있으나 (자한당 식 극우나 민주당식 자유주의, 정의당 식 사민주의 등과 무관하게) 대체로 기존 질서는 근본적으로 혁파되지 못하고 유지된다. 약간의 사회정치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부자들끼리의 연대는 공공화히면서 다시 격차사회를 재생산한다.

다섯째, 그렇다면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우선, 이 격차사회를 타파하고 평등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우리 자신부터 기득권 경쟁을 중단하고 고루 잘 사는 시회를 만들자고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빈부와 무관하게 모든 아이들이 개성에 맞게 학교와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또 어떤 일을 하더라도 먹고사는 데 별 지장 없게 교육 및 노동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이것에 사회적 합의가 돼야 한다. 합의가 되면 보다 구체적으로 실행 방안을 토론해나가야 한다. 예컨대, 전국의 대학을 K1에서 K100까지 국공립으로 통폐합하고, 학생들은 최소 70점 정도만 넘으면 자기 적성이나 소망에 맞게 지원 합격하게 하며, 그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 시회에 나오면 모두 적정한 대우를 받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이다.

여섯째, 그럼에도 한 가지 남는 점은, 우리가 모두 지극히 당연시하는 노동, 상품, 화폐, 경쟁 물신주의(페티시즘)를 어떻게 극복하 것인가 하는 점이다. 눈만 뜨면 돈 돈...하며 눈만 뜨면 일자리 일자리 한다... 왜? 삶에 필요한 모든 걸 상품으로 사야 하니까. 게다가 지금 우리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자본과 노동이 (의도치 않게) 협력하여 초래한 기후위기, 자원고갈, 에너지위기,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구제역이나 광우병, 조류독감, 돼지열병, 일중독, 소비중독, 게임중독, 관계중독 등 온갖 사회생태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그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리지만, 다른 편으로는 인류멸종 내지 지구멸망의 징후를 드러내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절박한 인류 절멸의 위기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노동-상품-화폐-경쟁의 물신 앞에 굴종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떨치고 일어나야 하는 이유다.

이제 우리는 만 16세의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문제제기처럼 "우리 집에 불이 났어요!"라고 온 세상에 외쳐야 한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 이상으로 아니, 그것마저 초래하고 만, 범지구적 노동-상품-화폐-경쟁의 물신주의라는 들불이 이 지구 전체를 불태우고 있다고 보는 게 옳겠다.

과연 우리는  그간의 굴종이나 불감증을 깨고 아무 두려움 없이 지구라는 우리집에 난 불을 제대로 끌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 불길에 휩싸여 모두 재가 되고 말 것인가? 바로 이 문제는 인사청문회 대상자의 사생활 보호나 가족 먼지털이 금지를 통한 인권 보호 차원의 문제보다 더 절박하고 더 근본적인 글로벌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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