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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배재대 교수), 장수명(한국교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 양해림(충남대 교수), 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장원순(공주교대 교수)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군국주의의 꿈에 사로잡힌 일본 우익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08-29 09:51  |  146 읽음

좌세준(변호사) 

 

 

죽은 형의 노동조합 운동은 자연발생적이다. 그것과 꼭 마찬가지로 또한 나의 민주주의관은 자연발생적이다. 나의 청소년 시대에는 우리나라에 불란서풍의 자유민권론이 매우 왕성하였고, 국회 개설 요망의 목소리가 천하를 풍미했다.

지금 시세는 급변하여, 구시대는 홀연히 소멸되고, 데모크라시의 신시대가 우리나라 전역을 뒤덮기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여전히 데모크라시의 진의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일종의 미신 우상적 숭배의 마음을 고집하는 것은, 나와 같은 자연발생적인 민주정치관을 품은 자에게는 오히려 기이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곧 사로잡힌 민중이라고 소리 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다카노 이와사부로(高野岩三)1946년 잡지 신세이(新生)에 쓴 글이다. 이 글은 코세키 쇼오이찌가 쓴 일본국 헌법의 탄생(김창록 옮김)에 인용되어 있다. 다카노는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71년생으로 19세기말 일본을 풍미했던 자유민권 운동의 세례를 받고 자랐다. 1906년 도쿄대 교수가 되지만 노동운동가인 형 후사타로의 영향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50대에 도쿄대를 사직하고, 1920오오하라(大原) 사회문제연구소를 만들어 스스로 소장이 된다. 다카노의 청소년 시대를 사로잡았던 자유민권론이 일본에 잠시나마 다시 등장한 것은 1945패전으로 시세가 급변한 직후였다. 다카노는 패전 이후 일본 헌법 개정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민간 영역에서 결성한 헌법연구회의 핵심 멤버였다. 패전 후에도 천황주권의 메이지 헌법(대일본제국헌법) 개정에 소극적이었던 일본 정부와는 달리 헌법연구회는 진보적 지식인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맥아더의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에 독자적인 민간 헌법안(헌법연구회안)을 제출하게 된다.

그런데 내부 논의를 거쳐 완성된 헌법연구회안마저도 천황제의 폐지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카노보다 한 세대 후배인 헌법연구회 회원 스즈키 야스조(鈴木安) 등은 기껏해야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 정도를 알 뿐자유민권 운동을 체험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원적으로 공화주의자였던 다카노 이와사부로에게 천황제를 잠정적으로나마 존속시키는 헌법연구회안은 찬성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다카노는 헌법연구회안과는 별개로 자신의 헌법관을 담은 <일본공화국헌법 사안 요강>을 집필한다. 다카노는 자신이 제안한 헌법안에서 천황제 폐지, 국민주권주의, 국민에 의한 대통령 선출, 대통령 3선 금지, 토지의 점진적 국유화를 주장했다. 천황주권의 국체(國體)’를 뛰어넘어 시대의 대세인 국민주권을 기반으로 한 헌법 개정을 주장한 것이다. 위에 인용한 글은 다카노가 자신의 헌법안을 발표하면서 쓴 글이다. 75세의 다카노는 데모크라시의 신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여전히 천황에 대한 미신적, 우상적 숭배에 빠져있는 당시 일본 지식인들과 대중들을 질타하고 있다.

 

최근 한일관계 악화를 계기로 화제가 된 책 일본회의의 정체패전후에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일본 우익의 실체와 일본회의가 장악한 일본 정치의 실상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 헌법 제9조 개정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아베 정권의 배후에는 다카노가 패전 직후 일갈했던 기이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천황제에 사로잡힌일본 우익들이 있다. 다카노의 계보를 있는 소수의 일본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일본의 우경화를 저지해온 고투가 있기는 하지만 21세기 신 국제질서 하에서 군국주의 일본을 꿈꾸는 아베 정권의 난폭한 질주를 저지하기에는 힘이 부쳐 보인다. 다카노가 살아 있다면 이런 아베 정권과 일본 우익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일본의 조치는 제국주의 일본의 전쟁피해자들에 대한 책임과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부인해온 일본 정부의 입장이 노골화된 것이다. 어찌 보면 아베 정권의 이와 같은 조치는 군국주의의 꿈에 사로잡힌일본 우익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그리 기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정작 기이한것은 아베 정권의 너무나 명백한 반역사적, 반인권적 조치의 본질을 애써 외면하면서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을 현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일부 야당의 정치적 공세다. ‘반일 종족주의운운의 넋 나간 헛소리를 주어 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기이하다는 표현조차 과분하다. 이들은 과연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것일까.

 

그렇다면 패전해방이라는 이름으로 815일을 맞았던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이에 반세기가 넘도록 미완으로 남아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일본에서 한국은 적()인가 성명의 모임이 벌이고 있는 서명운동 참가자가 1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31일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한국YMCA에서는 수출규제를 철회해 대화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대규모 시민 집회도 열린다고 한다. 아베 정권이 꿈꾸고 있는 군국주의 일본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의 공고한 연대의 힘이 아닐까. 여러 장애물도 있을 것이고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야말로 전후 일본의 지식인과 대중들, 그리고 해방 후 한국 시민사회가 평화와 민주주의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 쌓아온 역량을 한데 모아 새로운 한일 시민연대의 길을 열어나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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