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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배재대 교수), 장수명(한국교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 양해림(충남대 교수), 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장원순(공주교대 교수)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탈근대 시대 인권의 어려움과 대안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06-12 11:12  |  133 읽음

_장원순(공주교육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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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 시대를 대변하는 학자 중에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폴란드 사회학자가 있다. 바우만은 탈근대 시대를 흔히 액체근대 시대라고 부른다. 그가 말하는 액체근대 시대의 특징은 모든 것이 액체와 같다는 것이다. 액체는 형태를 유지하지 않으며, 흐름을 중요시 하며, 쉽게 이동하고, 가볍고, 일관성이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바우만에 따르면 액체의 이러한 특성은 현대사회의 모습이 되고 있다. 일자리는 안정성 없이 쉽게 유동한다. 그래서 정규직은 사라지고 비정규직과 파트타임은 늘어난다. 사람들을 묶어주던 끈들은 모두 풀어져 나가 공동체는 사라지거나 매우 가벼운 성격의 모임으로 대체되고, 사람들은 홀로 남아 개인화된다. 텔레비전 토크쇼는 가벼운 개인사들로 채워지고, 유동하는 사회에서 정체성은 그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고 있다.

 

이러한 탈근대 시대 인권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필자의 생각에는 인권은 몇 가지 어려움에 당면하게 된다. 첫째, 인권의 주체인 인간 존재 그 자체가 불안정해진다. 이는 인권을 확고하게 인식하고 실천해야 하는 주체 자체가 약해져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입학한 학생들에게 존엄한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물은 적이 있다. 그들의 답변 중에 매우 의외의 것이지만 자주 등장하는 답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존심이라는 말이다.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들의 답변은 요즘 사람들의 존재감이 얼마나 불안정 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모든 것이 변해가는/유동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더 이상 미래에 시선을 고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오직 확실한 오늘,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즉시성의 시대에 이상과 미래는 사라진다. 그런데 인권은 일종의 약속이고 이상이다. 미래와 가치가 상실된 이들에게 인권은 공허하고 때때로 과도하게 이상적으로 보인다. 지난 시간 필자의 강의 주제는 하버마스의 담론 민주주의이었다. 하버마스의 생각을 이야기 한 후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하버마스의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첫 번째 답변은 너무 이상적이라는 말이었다. 즉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개인화된 시대 사회 및 정치문제를 해결하는데 꼭 필요한 집단행동이 어려움에 처한다. 이는 세계인권선언 제21조인 정치권이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의미한다. 민주정치의 기제는 있으나 탈근대 시대 개인화된 사람들은 사회 및 정치문제를 대화와 토론으로보다는 개인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즉 그들은 더 이상 함께 어깨 걸고 나아가려고도, 타인과 연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난 해 우리 학교 총학생회 선거는 투표율 부족으로 무산되어 현재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그 한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면 인권은 이러한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왜 모든 것이 유동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바우만에 따르면 그것은 많은 부분 자본의 흐름과 관련되어 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우리의 생각과 정보의 흐름만큼 빨리 움직인다. 늘 새롭게 등장하는 지식과 정보는 새로운 상품의 근원이 되어 누군가에게는 이윤을 가져다주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은 그 속도에 지치고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가상현실과 게임 그리고 미디어 속에서 위안을 찾지만 그것은 잠시 일뿐이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SNS에서 좋아요를 받고, 게임과 드라마에서 잠시 위안과 동감을 얻지만, /그녀는 다시 유동하는 현실로 나아가야 한다. 이윤을 위해 인간적인 삶을 초월해 버린 자본의 움직임을 이제 진정 인간을 위해 움직이는 자본으로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필자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여 라고, 탈현대 시대 약해져만 가는 인권에 근거하여 말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너무 이상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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