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全人權은

김종서(배재대 교수), 장수명(한국교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 양해림(충남대 교수), 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장원순(공주교대 교수)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아름다운 길’ 말고 ‘나쁜 길’을 선정해야 하는 이유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05-01 15:59  |  128 읽음

글_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길'은 사람이 만들어낸 문명 중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길은 생활환경은 물론 역사를 바꾸었다. 


서양의 '길'과 동양의 '길'은 목적이 달랐다. 서양의 길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에서 보이듯 세계를 정복하려는 군사용이었다. 병력을 수송하고 전리품을 옮기기 위해 산을 자르고 돌을 깔았다. 속도와 경쟁이 길의 주요 존재 이유였다.

 

동양의 좋은 길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고 자연 법칙에 순응하는 길이었다. 다른 한편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통신로의 개념이 강했다. 동양의 길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자연에의 순환, 소통의 통로였다. 근대화 이전 한국의 길이 서양인이 보기에 시골이건 서울 도성이건 좁고 볼품없었던 이유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한국의 도로를 식민지 개척로로 인식했다.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신작로를 만들었고, 수탈을 위해 철도를 깔았다. 조선총독부는 우리의 길과 길의 문화를 망가뜨렸다. 해방 이후 밀려온 천주교와 기독교는 우상 숭배라며 장승과 노거수, 돌무더기, 미륵당을 하나씩 허물었다.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과 제 2의 근대화는 길의 역사를 크게 뒤흔들었다. 도로확포장과 고속도로 개설이라는 이름으로 유물과 유적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이후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 ,도시화는 그나마 남아 있던 전통 문화와 경관을 송두리째 제거했다. 

 

동물과 사람이 오가던 오솔길과 지게 길은 고속도로, 고속화도로, 산업도로가 됐다. 도로마다 오갈 곳 없는 로드킬 당한 동물 사체가 즐비하다. 어느 길을 가나 사람보다는 자동차가 우선이다. 대전에서는 대전천변을 따라 자동차 도로를 만들었다. 충남에서는 4차선 고속화도로 또는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군사분계선처럼 나뉜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지금도 길을 새로 만들고 확포장하기 위해 문화재를 옮기거나(논산), 백제부흥운동을 벌이던 임존성과 자연휴양림이 있는 슬로시티에는 서부내륙고속도로 관통(예산군 대흥면) 계획이 서 있다.  마을주민들이 "서부내륙고속도로는 대흥면을 절대 통과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금강에는 4대강 사업으로 대규모 댐이 생기고, 강변을 따라 자전거 데크길이 깔렸다. 임도와 농로가 미치는 곳에는 전원주택단지와 태양광 설비가 즐비하다. 길이 휴식과 소통이 아닌 개발의 첨병이 돼 문화, 경관, 공동체를 피괴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매년 '걷기 좋은 길'과 '아름다운 길'을 찾아 선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14eab6faaa8bb92b93563dd12bc84288_1556694066_8179.jpg
▲  충남지속가능발전협의회 참여자치분과가 29일 오후 1시 30분 충남도청 본관 소회의실에서 "(가칭)나쁜 길 선정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심규상



와중에 충남지속가능발전협의회(회장 이진원 공주대 교수 아래, 충남 지속협)가 '나쁜 길' 선정을 위한 사전 워크숍을 열고 기준 마련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충남 지역에서 자동차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걷기 어렵고 단절된 대표적인 ‘나쁜 길’을 찾아내 주민들과 관계 기관에 '나쁜 길'의 실 모델로 제시하겠단다. 재발 방지는 물론 개선의 목적도 담겠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길은 서둘러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여 자손 만대 물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성급히 만든 길을 따라 허투루 돈이 새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전통문화도, 역사도, 공동체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