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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동백꽃의 노래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01-24 10:28  |  201 읽음

애기동백꽃의 노래

 

글_ 좌세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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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산에 하얗게 눈이 내리면

들판에 붉게 붉게 꽃이 핀다네

님 마중 나갔던 계집아이가

타다 타다 붉은 꽃 되었다더라

 

님 그리던 마음도 통꽃이 되어

하얗게 님의 품에 안기었구나

우리 누이 같은 꽃 애기동백꽃

봄이 오면 푸르게 태어나거라

 

제주4·3을 기억하는 행사나 장소에서 많이 불려온 <애기동백꽃의 노래> 앞부분이다. 지난 해 4·370주년을 맞았다.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추념사로 제주의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지난 117일 제주지방법원은 4·3 당시 내란실행, 국방경비법위반으로 형을 살았던 18명이 청구한 재심 사건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를 모두 기각한다는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공소기각 판결은 국가 형벌권 행사 수단인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 내려지는 판결이다. 재심 청구를 한 분들은 1921년생부터 1933년생으로 19484·3 당시 열다섯에서 스물 예닐곱 살이었던 분들이다. 무려 70년 만에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자신들이 처벌받고 구금되었던 것이 무효임을 확인받은 것이다.

 

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어렸을 적에 산폭도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머리를 자르지 않고 더벅머리를 하고 다니면 어르신들은 너 산폭도냐. 머리 좀 깎아라라는 말을 하곤 하셨다. 4·3 당시 체포되거나 사살된 입산자들 대부분은 머리를 제대로 깎지 못한 장발의 더벅머리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긴 머리가 산 폭도를 연상하게 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연상마저도 억누르고 살아야 했던 것이 4·3을 목도했던 제주 사람들의 어둡고 두려운 잠재의식이었다.

 

이번 재심 판결에서 무죄를 받은 18명의 피고인들은 “1948년 가을경부터 19497월경 사이에 군·경에 의하여 당시 제주도 내에 설치된 수용시설 등에 구금되어 있다가 194812월경 이후 19497월경에 이르기까지 육지에 있는 교도소로 이송되어 수형인의 신분으로 구금되어 있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 18명이 어떤 공소사실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인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단기 42827(군법회의분) 수형인명부에 이름, 나이, 직업, 본적지, 항변 및 판정, 언도 일자, 형량 및 수감 교도소가 나와 있을 뿐이다. 죄명은 내란실행’,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어마어마하지만 자신들이 당시 구체적으로 어떠한 범죄사실로 재판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70년을 살아온 분들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4·3 특별법개정에 대한 논의가 힘을 받고 있다. 18명의 재심 청구인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피해 유족들, 생존 수형자를 포함한 피해자들은 마음의 위안을 받았을지 모르나, 국가범죄라 할 수 있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의 정당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4·3의 진상규명 또한 여전히 미완의 상태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4·3 특별법 개정안에는 19481229일에 작성된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20등에 기재된 사람에 대한 각 군사재판을 무효로 확인한다.”는 규정을 통해 재심 청구의 방법이 아니더라도 무고한 4·3 피해자들이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법률의 제명을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으로 개정함으로써 4·3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함께 국가의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게 했다.

 

아직도 낡은 시대의 논리를 들어 4·3의 진상규명, 피해자 명예회복과 정당한 보상을 애써 저지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그런 분들에게 4·3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알게 모르게 작동하는 연좌제의 그늘 속에서 숨죽이고 살아온 4·3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이제 제주 사람들은 4·3의 어둡고 아픈 기억을 가슴에 묻고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기억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올 봄이 오기 전 제주에 가시거든 한라산 잔설 속에 피어 있는 동백꽃을 한 번 보고 오시라. 4·3의 아픈 기억을 딛고 평화의 섬으로 봄을 맞는 제주 오름 등성이에서 <애기동백꽃의 노래>도 한 번 불러 보시라.

 

붉은 애기 동백꽃 붉은 진달래

다 같은 우리나라 곱디 고운 꽃

남이나 북이나 동이나 서나

한 핏줄 한 겨레 싸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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